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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쓰며 이렇게 허술하냐" 인천공항의 납득 힘든 폴란드 투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장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신공항 조감도. [출처 폴란드 신공항 홈페이지]

폴란드 바르샤바 신공항 조감도. [출처 폴란드 신공항 홈페이지]

 "아니 어떻게 공기업이 80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해외에 투자하면서 이렇게 투자비 회수방안을 허술하게 짤 수가 있나요? 민간기업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해외사업을 많이 경험한 지인이 최근 혀를 차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천공항이 폴란드가 수도 바르샤바 인근에 14조원을 들여 건설하려는 신공항에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하려는 걸 두고 한 얘기다. 인천공항은 8000억원을 들여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수목적법인의 지분 12.5%를 확보해 운영에 공동참여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민간기업에선 100억만 투자한다고 해도 정말 치열하게 수익성과 투자비 회수 가능성을 따지고 유사시 대책까지 세운다”며 “반면 인천공항은 금융비용까지 하면 1조원이 넘는 규모인데 대부분 주주배당금에 의존하고, 안 되면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너무 안일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인천공항이 밝힌 투자비 회수방안은 ▶지분율에 따른 주주 배당금 ▶ 필요시 지분 매각 ▶건설 및 운영에 따른 부가 수입 등이 전부다. 그런데 이 가운데 '건설 및 운영에 따른 부가 수입'은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폴란드는 유럽연합(EU) 소속 국가이기 때문에 공항 건설에 참여할 건설사 선정도 EU 조달 협정에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EU 외의 다른 나라 건설업체가 큰 규모의 건설사업을 따 내기기는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운영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공항 운영권'은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수목적법인은 폴란드정부가 51%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전략적·재무적 투자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폴란드 신공항 위치도. [자료 인천공항]

폴란드 신공항 위치도. [자료 인천공항]

 인천공항은 전략적투자자로 참여하면 건설·운영컨설팅과 체크인시스템 납품권을 딸 수 있다고 말한다. 모두 2000억원이 조금 넘는 사업이지만 인건비와 체재비, 제작원가 등을 고려하면 실제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5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투자비 회수 방안은 배당금과 지분 매각이 사실상 전부다. 인천공항은 투자를 개시하고 10년 뒤인 2035년부터 운영수익을 배당받기 시작해 9~10년 후면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일 배당금만으로 투자비 회수가 안 되면 2044년께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나머지 부족분을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배당금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겠다는 계획은 폴란드 신공항이 계획대로 막힘없는 고속성장을 계속 이어간다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만 가능하다. 지분 매각 역시 공항 운영이 어려워지는 경우 인수자를 찾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은 폴란드 측에 투자비에 대한 '풋옵션'( 장래의 일정한 기간 내에 주식, 채권 등을 일정한 가격으로 일정한 수량을 매각할 권리)을 요구하고 있지만, 폴란드가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배당금과 지분 매각을 통한 투자비 회수 가능성도 유동적인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천공항은 투자 강행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이번 투자사업에 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기업예비타당성조사(공타) 중간보고에서 수익성 지수(PI,Profitability Index))가 낮게 나오자 수요와 할인율, 투자비 항목 등에서 강하게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PI는 투자 금액 대비 회수 가능한 금액 비율로 이 지수가 1보다 크면 투자할 가치가 높다고 해석한다. 인천공항에 따르면 최근 KDI가 일부 수정 요구를 받아들여 지수가 0.9가량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인천공항의 폴란드 신공항 투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공항의 폴란드 신공항 투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평가 대상자의 이의제기에 공타 결과가 쉽게 바뀌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한 고위 관료는 “공타는 엄격한 기준이 있는 건데 피평가자가 수정을 요구했다고 수치가 많이 바뀐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종 공타결과는 5월 초쯤 나올 예정이다.

 이번 투자 추진을 두고는 사업성 논란 못지않게 인천공항의 리더십 공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신공항 투자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김경욱 사장이 이달 말 사퇴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장직무대행을 맡게 될 이희정 부사장이 투자사업을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인천공항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투자를 직무대행이 결정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국토교통부와 인천공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공항운영과 관련한 긴급한 현안이 아닌, 미래 먹거리에 대한 대규모 투자 검토와 결정은 새로 취임할 사장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폴란드 신공항의 투자자 모집 입찰은 5월 중에 이뤄질 예정이다. 김범호 인천공항 미래사업본부장은 “우리도 폴란드 측에 입찰 일정을 가능한 한 늦춰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너무 손 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기업의 무리한 투자가 결국 국민에게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큰 데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은 이제 막 코로나 19의 한파를 뚫고 나와 몸을 추스르는 단계다. 적자도 만회하고, 움츠러들었던 경쟁력도 다시 회복해야만 한다. 투자비 회수가 불투명하고 타당성 논란까지 겪고 있는 폴란드 신공항 투자에 고집스레 매달릴 때가 아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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