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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시선

27년 동결 혼잡통행료, 초심 돌아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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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서울에는 27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요금이 있다. 남산 1·3호 터널에서 받는 혼잡통행료다. 시작은 1996년 11월이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서울시장을 맡았던 시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산 터널의 혼잡통행료는 변함없이 2000원이다. 이후 고건·이명박·오세훈·박원순 시장을 거쳐 다시 오세훈 시장이 취임했다. 하지만 아무도 요금 인상에 나서지 않았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자가용 이용자에게 실질적으로 요금 인하 혜택을 준 셈이다.

반면 대중교통 요금은 꾸준히 올랐다. 1996년 400원이던 지하철 기본요금은 현재 1250원이다. 이 기간 요금 인상률은 200%가 넘는다. 올해 하반기에는 1550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서울시는 운송원가 상승 등으로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대중교통 이용자에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24%나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시의회도 요금 인상에 동의했다. 이제 남은 건 오세훈 시장의 최종 결정뿐이다.

남산 터널 통행료 무료 시범사업
지하철 요금은 하반기 인상 예정
자가용 진입 억제 정책 폐기했나

그동안 서울시장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교통 정책에는 일관된 방향이 있었다. 대중교통 활성화와 자가용 이용 억제다. 그렇게 보면 남산 터널 혼잡통행료는 진작 올렸어야 한다. 이 돈으로 대중교통 이용자에게 혜택을 주면 어땠을까.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 간다. 서울시는 지난달 17일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남산 터널 혼잡통행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두 달간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시범사업이다. 첫째 달은 도심에서 강남 방향, 둘째 달은 양쪽에서 통행료를 면제한다. 서울시는 “혼잡통행료 폐지를 염두에 둔 사전 절차는 아니다”라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요금 인상이 아니라 요금 면제의 시범사업이란 점에서다.

현재 서울시의회에는 시의원들이 발의한 두 건의 혼잡통행료 폐지 안건이 올라가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실상 같은 안건을 제출했다. 평소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여야 정치권이 희한하게 이 사안에선 의견일치를 봤다.

사실 남산 터널 혼잡통행료는 애초부터 인기 있는 정책이 전혀 아니었다. 공짜로 다니던 길에서 갑자기 돈을 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순 전 시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밀고 나갔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정치적 표 계산을 내려놓고 서울의 미래를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당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 시장은 “부작용이 없는 정책이 어디 있겠느냐. 많은 비난을 받겠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산 터널의 역사는 5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김신조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이 서울 시민에게 준 충격은 엄청났다. 이듬해 김현옥 서울시장은 남산 터널 건설을 포함한 서울 요새화 계획을 발표했다. 평소에는 남산 터널을 교통수단으로 쓰다가 전쟁이 벌어지면 30만~40만 명을 수용하는 대피공간으로 활용하는 구상이었다. 터널 공사비는 통행료 수입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예전에 남산 터널을 통과하던 운전자들이 요금소에서 통행료로 동전을 던지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정책의 목표도 달라졌다. 이제는 공사비 회수가 아니라 자가용 이용 억제가 목표다. 혼잡통행료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선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혼잡통행료 부과에도 서울 도심으로 자가용 진입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이건 요금 폐지가 아니라 요금 인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필요하다면 혼잡통행료 징수 구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서울연구원이 2012년에 낸 보고서(‘서울시 혼잡통행료 제도 효과 평가와 발전 방향’)를 살펴보자. 보고서에 따르면 혼잡통행료 시행 초기에는 남산 1·3호 터널의 통행량이 이전보다 25% 감소했다. 하지만 2010년 기준으로는 제도 시행 전의 97%까지 교통량이 회복했다. 보고서는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혼잡통행료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요금 인상과 시간대별 차등 부과를 제안했다. 차량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더 비싼 통행료를 물리자는 뜻이다.

이제라도 서울시는 교통 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혹시 내부적으로 자가용의 도심 진입을 더는 억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자가용을 우대하고 대중교통을 차별하는 교통 정책이라면 시민 다수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