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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그릴줄 아냐" 악플 응징했다...4차원 솔비 '다른 차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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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가수 솔비(권지안)가 개인전 '무아멤무(Moi-MÊME)'를 연 갤러리치로에서 중앙일보와 만났다. 김경록 기자

18일 오후 가수 솔비(권지안)가 개인전 '무아멤무(Moi-MÊME)'를 연 갤러리치로에서 중앙일보와 만났다. 김경록 기자

연예인 솔비의 삶은 화려했지만 외로웠죠. 악플로 너덜너덜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권지안에겐 그런 솔비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미술로 치유한 마음이 더 단단해졌어요.

20대 초 가수로 데뷔해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했던 가수 솔비(본명 권지안·39)는 30대를 관통한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악플·루머 등으로 우울증을 앓았던 그는 그림에서 치유 받았다고 한다. 이젠 12년 차 화가로 활동 중이다. 지난 10여 년의 작품을 모아 전시한 개인전 '무아멤무(Moi-MÊME)'가 열린 갤러리치로에서 18일 그를 만났다. 그는 최근 자전적 에세이 『나는 매일, 내가 궁금하다』도 출간했다.

어릴 적 끼가 많아 합창·리듬체조·연극 등을 했던 그는 22세에 3인조 혼성 그룹 '타이푼' 멤버로 데뷔했다. 통통 튀고 솔직한 이미지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했고 단번에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엉뚱하고 당돌한 이미지에 갇혀 쉽게 악성 댓글 공격의 대상이 됐다.

예능에 출연하며 바보, 4차원이라는 이미지를 얻은게 아닌가.
후회는 없다. 내 잠재력을 알게 됐고 사랑도 많이 받았으니까.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실 때 이불에 들어가 예능을 보면 웃을 수 있었다. 또 당시 날 위해 일하는 소속사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조금 더 전략적으로 나를 보여줬었더라면 하는 생각은 가끔 한다.
악플·루머로 고생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일부러 SNS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아무 언급 없이 올려봤다. 얼마 안 있어 내 결혼 기사가 나왔다. 우리가 얼마나 허구에 속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실험해본 셈이다. 이렇게 터무니 없는 가짜 이야기들과 악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는 "그림에는 정상이라는 기준이 없어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진 엠에이피크루, 갤러리치로 제공

그는 "그림에는 정상이라는 기준이 없어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진 엠에이피크루, 갤러리치로 제공

2010년쯤 우울증 치료 과정에서 접한 미술이 그에게 '숨구멍'이 됐다. 솔비는 "그림에는 '정상'이라는 기준이 없어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201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8년부턴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해외에서도 전시를 했다. 현재 장흥 가나아뜰리에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에겐 자격 논란에 이어 표절 시비도 있었다. 2020년 디자인한 케이크가 미국 현대 예술가 제프 쿤스의 '플레이-도우'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솔비는 "오마주"라고 해명하는 동시에, 자신을 향한 비판을 소재로 '저스트 어 케이크(Just a cake)'란 작품 30여 점을 내놨다. 그는 "잘못하지 않은 것에 사과하고 싶지 않았고,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며 "'당신의 악플도 내 작업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과는 그릴 줄 아냐″는 악플에 대응해 내놓은 '애플 시리즈' 중 일부. 사진 엠에이피크루, 갤러리치로 제공

″사과는 그릴 줄 아냐″는 악플에 대응해 내놓은 '애플 시리즈' 중 일부. 사진 엠에이피크루, 갤러리치로 제공

미술에서 전문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보통 전공을 하거나 아카데믹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 예술에서만큼은 전문성의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지도를 등에 업고 화가로 활동한다는 비판은 어떻게 보나.
인지도가 플러스만 되지 않는다. 실제론 마이너스가 훨씬 많았다.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들. 내가 유명인이어서 내 작품을 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람들이 그림을 선택·구입하는 이유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해 발표한 작품 '허밍 레터 위드 모네(Humming Letter with Monet)'. 사진 엠에이피크루, 갤러리치로 제공

올해 발표한 작품 '허밍 레터 위드 모네(Humming Letter with Monet)'. 사진 엠에이피크루, 갤러리치로 제공

그가 가장 힘들었던 작업 중 하나로 꼽은 '하이퍼리즘 레드(2017)'도 이번 전시회에 걸렸다. 여성의 상처를 주제로 한 작품은, 음악과 함께 솔비가 흰 캔버스 위에 흰색 옷을 입고 나타나 각종 물감을 뒤집어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쓰러지고 무너져도 다시 캔버스 위로 올라오며 생명력을 강조했다. 2018년 말,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조각을 담당하는 일본인 예술가 에츠로 소토를 우연히 만났을 때도 이 작품을 보여줬다. 소토는 "당신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솔비는 타인과의 소통이 어렵거나 내면의 상처가 있는 이들에게 미술을 권했다. 전문성이 없어도 그 안에서 치유되고 위로를 받으면 그뿐이라고. 그는 "여전히 '나'라는 작품을 그리는 중"이라며 "많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작품을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멋지게 그려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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