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6월부터 세금 미납 예상 됩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동탄 오피스텔 임대인)
경기도 화성 능동의 20.15㎡(약 6평) 오피스텔에서 전세로 거주 중인 김모(21)씨는 19일 오전 집주인 박모(48·여)씨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다. 박씨는 남편과 함께 소유한 오피스텔 250여 채를 가지고 임대 사업을 해왔지만, 최근 전세 사기가 의심돼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김씨는 “어제 법무사로부터 ‘소유권 이전 등기를 6월10일까지 접수해야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문자를 받고 처음엔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라고 말했다. 세금 미납으로 집이 경매에 넘어갈 수 있으니 전세로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구매하라는 사실상의 경고 문자라는 게 김씨의 판단이다.
김씨는 잘못하면 전세보증금 9000만원을 날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이날 오전 회사를 조퇴하고 전세 계약을 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중개업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간판 아래 걸린 대표 공인중개사 이름 역시 김씨가 계약할 당시 있었던 이모(59)씨가 아니었다. 이씨는 지난달 화성시에 폐업 신고를 하고 현 공인중개사에게 중개업소를 넘긴채 자취를 감췄다. 박씨 부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중개업소를 찾았는데, 공인중개사마저 사라지자 김씨는 중개업소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라진 중개사 이씨는 최근 2년 6개월 간 박씨 부부의 부동산 매매·임대차 계약을 도맡았다. 2020년 11월부터 지난달 15일 폐업 신고를 하기까지 2년 6개월 동안 이씨는 총 283건의 부동산 매매계약을 했다. 이중 박씨 부부의 매매 계약만 106건(37.5%)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시 관계자는 “한 공인중개사가 부부 임대사업자의 매매와 임대차 계약을 거의 다 하다시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사실상 전속 공인중개사 역할을 한 것으로 이례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씨는 계약서에 서명·날인을 하지 않은 혐의(공인중개사법 위반)로 적발돼 지난해 1월부터 약 한 달간 업무정지 행정처분을 받았지만, 박씨 부부의 위임장을 받은 이씨는 이 기간에도 대리인으로 전세 임대차계약을 맺거나 중개 등을 했다고 한다. 업무정지 기간인 지난해 2월16일 박씨 소유 오피스텔을 1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한 서모(36)씨는 “중개사 부부가 굉장히 친절하게 응대하다가 전세 사기가 걱정돼 꼬치 꼬치 물어보면, 예민하게 반응했다”며 “임대차 계약 중개인은 동탄2신도시의 상호명이 흡사한 중개사무소였는데, 중개인의 유선 전화번호는 이씨 사무실로 적혀 있었고 계약도 이씨 사무실에서 했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업무정지 상태에서 중개 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절대적 사유’로 등록 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화성시 관계자는 “업무정지 상태에서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중개 행위를 하다 적발되면 등록 취소 사유”라며 “현재 해당 공인중개사가 폐업을 했기 때문에 등록 취소 처분을 할 순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한편, 사건을 수사 중인 화성동탄경찰서는 지난 18일부터 이틀 간 박씨 부부와 오피스텔 43채를 보유하고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지모씨 등 임대사업자 4명과 계약을 한 임차인 58명에 대해 피해자 조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