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관우에게서 항복을 받고 그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정욱이 계책을 냈습니다.
관우는 만인(萬人)에 필적할 사람이라 지모(智謀)로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 즉시 항복해온 유비의 병사를 하비성으로 들여보내 관공에게 도망쳐 돌아왔다고 말하게 하고 성중에 있다가 내응하도록 하십시오. 관공이 출전하도록 이끌어 내 거짓으로 패한 체하며 그를 다른 곳으로 유인한 다음, 날랜 군사들로 그가 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길을 막은 뒤에 달래야 할 것입니다.
조조는 정욱의 계책을 따라 관우를 고립무원(孤立無援)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날 관우 덕에 살아났던 장료가 관우를 만났습니다. 관우가 사생결단으로 싸우다가 죽겠다고 하자 장료는 그것이야말로 세 가지 죄라고 말합니다. 첫째, 의형제가 되어 생사를 같이하기로 한 맹세를 저버리는 죄. 둘째, 유비가 부탁한 두 부인을 지키지 못한 죄. 셋째, 한 황실을 바로잡지 못하고 어리석은 죽음을 택하는 필부의 용맹입니다.
관우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세 가지 조건을 받아주면 항복하겠다고 했습니다. 첫째, 한나라 황제에게 항복하는 것이고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두 분 형수에게는 황숙(皇叔)의 봉록과 대우를 하고 누구든 출입을 금지한다. 셋째, 유비가 있는 곳을 알면 어디든 상관없이 즉시 떠난다.
장료가 세 가지 죄에 대해 말한 부분을 관우는 정반대의 논리로 제안했습니다. 조조는 세 번째 조건에 대해 망설였지만 장료가 설득하자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집을 마련해주고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관우는 한 황실로부터 공식 직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조는 관우를 후하게 대했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 작은 연회를, 닷새에 한 번씩 큰 연회를 열었습니다. 10명의 미녀를 뽑아 모시게도 했지만 관우는 그들을 모두 안채로 보내 형수들을 모시게 했습니다. 관우가 입고 있는 녹색 비단 전포가 낡아서 새 비단으로 한 벌을 지어주었습니다. 관우는 조조가 준 전포 위에 낡은 전포를 덧입고 유비를 잊지 않겠다고 하자 조조는 섭섭했습니다.
조조는 관우의 환심을 사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관우가 삐쩍 마른 말을 타고 있자 여포가 타던 적토마(赤免馬)를 주었습니다. 관우는 기쁜 마음에 조조에게 연거푸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미녀와 황금, 비단을 주어도 인사 한 번 하지 않더니 오늘은 이렇게 기뻐하는구려. 어찌 사람은 천하게 여기고 말만 귀하게 여기시는가?
저는 이 말이 하루에 천 리를 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형님이 계신 곳을 알게 되면 그날로 달려가 뵐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조는 당황스럽고 이내 후회했습니다. 그 후, 조조는 장료를 통해 관우가 조조의 후의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반드시 공을 세운 후에 가겠다는 뜻을 알고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한편, 원소에 의탁하고 있는 유비는 아우들과 가족의 소식을 몰라 근심 속에 지냈습니다. 이를 본 원소가 조조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풍(田豊)이 지구전을 펼 것을 제안합니다. 원소가 전풍의 전략을 숙고하자, 마음 급한 유비가 원소를 꼬드겼습니다.
조조는 임금을 속이는 역적입니다. 명공께서 만일 토벌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대의를 잃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대의 말씀이 매우 훌륭하오.
나관중본에는 유비가 원소에게 말한 내용 앞에 한 문장이 더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붓이나 놀리는 선비는 고생스럽게 원정하며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에 편안히 앉아서 녹봉이나 받아먹으려고 합니다.
유비의 음험한 화술이 찐득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모종강이 이 부분을 삭제하는 것은 아주 지당합니다. 유비는 인의(仁義)의 화신(化神)이어야 하니까요. 전풍이 원소에게 재삼재사 간청했습니다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유비에게서 들은 말 그대로입니다.
너희들은 글 장난이나 하고 무력을 업신여기면서 내가 대의를 잃게 할 작정이더냐?
원소는 전풍을 죽이려다가 유비가 말리자 옥에 가뒀습니다. 원소의 사람됨이 이토록 편협하고 얄팍하니 전풍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를 지켜본 또 다른 참모인 저수는 친척들에게 전 재산을 나눠주고 눈물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군사를 따라 싸우러 가오. 이긴다면 위세가 더할 수 없게 되겠지만 진다면 한 몸도 보전할 수 없게 될 것이오.
원소는 안량을 선봉으로 삼아 백마현으로 진격했습니다. 조조도 1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왔습니다. 안량은 연달아 조조군의 장수들을 베었습니다. 조조군에서는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정욱이 관우를 천거하자 조조는 관우가 공을 세우고 가버릴 것이 걱정됐습니다.
유비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원소에게 의탁하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관우를 내세워 원소군을 격파한다면 원소는 유비를 의심해 죽일 것이 분명합니다. 유비가 죽는다면 관우가 갈 곳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조조는 관우를 출정시킵니다. 관우는 안량의 10만 병사를 ‘흙으로 빚은 닭과 개(土鷄瓦犬)’로 치부하고 적토마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안량이 미처 손을 쓸 참도 없이 목을 베었습니다. 연이어 조조군 장수들의 목을 베던 안량이 관우와 싸우지도 못하고 이렇게 맥없이 죽다니 너무 이상하지요? 나관중본에는 안량이 무방비인 채로 죽은 이유가 나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래 안량이 원소에게 인사하고 떠날 때 유비가 조용히 부탁했다.
나에게 관운장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키는 아홉 자 다섯 치요, 수염은 한 자 여덟 치로, 얼굴은 무르익은 대추 같고, 봉황의 눈 위에 누운 누에 같은 눈썹이 붙었소. 푸른 비단 전포를 즐겨 입고 누런 말을 타면서 청룡대도를 쓰는데 반드시 조조한테 있을 테니 그를 만나면 급히 여기로 오라고 일러주시오
이에 안량은 관우가 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그가 자기에게로 오는 줄로만 여겨 맞서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아 관우의 칼에 찍혀 말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이제 사건의 전모가 이해되지요? 관우는 무신(武神)이어야 하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면 그야말로 커다란 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종강은 이 부분을 싹둑 잘라내 관우의 무용담을 흠뻑 키웠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