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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매일 3㎞ 걷다 몸져눕고 떠났다…코로나 이긴 뒤 시작된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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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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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6일 오후 대구 달서구보건소 뒤편 월성공원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의 한산한 모습. 뉴스1

이달 6일 오후 대구 달서구보건소 뒤편 월성공원에 마련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의 한산한 모습. 뉴스1

서울 서초구 강모(79)씨는 지난해 초 코로나19에 걸려 일주일 넘게 입원치료를 받았다. 팍스로비드 같은 코로나 치료제에다 스테로이드제제 등의 약물치료를 받았다. 입맛이 너무 써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바이러스가 사라졌지만, 며칠 더 누워있었다.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매일 2~3㎞ 산책할 정도로 건강한 편이던 강씨는 간신히 부축을 받아서 화장실을 오갔다. 좀 지나자 가족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됐다. 지난해 초겨울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급격히 악화했다. 큰 병원으로 실려 가 중환자실 치료를 받다 이틀 후 숨졌다. 아들(54)은 "코로나 완치 후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계속 몸이 축나더니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해 요즘도 매일 10명 안팎 희생된다. 지난해 2만6593명이 숨졌다. 강씨는 코로나 완치 후 10개월가량 지나 숨졌으니 누구도 코로나와 연관 짓지 않는다. 정부 통계에서 코로나 사망자로 잡지 않는다. 델타·오미크론 등의 코로나 변이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의료진과 중환자실·응급실 등의 의료 자원이 코로나에 집중됐다. 심장병·뇌질환 등 중병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숨지거나 후유장해를 안았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한다. 강씨는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면 최악의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타격 사망자 2만명 추정 #격리 치료에 근력쇠퇴·영양악화 #정부통계·부수적 사망에 안 잡혀 #"완치 후 노쇠 예방 대책 절실" #

'방안 코끼리' 같은 그림자 사망자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강씨 같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연관 사망자'를 "방 안의 코끼리"라고 표현한다. 코끼리 같은 거대한 게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총 사망자는 37만2800명이다(통계청). 2021년(31만7680명)보다 무려 5만5120명(①) 늘었다. 역대 최대 증가율(17.7%)이다. 지난 10년 고령화로 인해 연평균 2%가량 사망자가 늘어왔다. 지난해 사망자 중 6454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코로나 사망자(2만6593명)를 더하면 3만3047명(②)이다. 그러면 2만2073명(①-②)은 사망원인이 뭘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심장병·뇌질환 등의 부수적 사망자에다 '연관 사망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희원 교수는 "노인이 일주일 신체활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10% 줄어든다. 게다가 코로나는 염증 질환이라서 병 자체만으로도 근육이 빠진다. 치료 약으로 스테로이드제제를 쓰면 근육이 더 빠진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이미 노쇠 직전, 즉 경계선에 있는 상태에서 근육량이 3~4% 줄면 바로 노쇠 상태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윤종률 한림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에 감염돼 2~3주 입원해 있다가 나오면 근육이 감소하고 영양불량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노쇠가 악화해 숨진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초고령 노인 노쇠에 더 치명적 

 코로나는 90세 안팎의 초고령 노인에게 더 치명적이다. 과거 고관절이 골절된 적이 있는 A(96)씨는 치매 환자이다. 지난해 11월 코로나에 감염됐다. 경증이었다. 재택치료를 받으면서 동네의원에서 처방한 팍스로비드를 먹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졌고 일주일 만에 격리 해제됐다. 하지만 그 후 일주일이 지나자 미열이 나고 점점 기력이 떨어졌다. 의식마저 흐려졌다. 대학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코로나가 아니었다. 계속 식사를 못 했고 가래가 찼다. 어느 날 응급실로 실려 갔고, 흡인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이는 세균이 많은 위 분비물이나 구강 내 분비물이 식도가 아닌 기관지를 통해 폐로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는 병이다. 그녀는 병원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사망에 이르지는 않아도 치명타를 입기도 한다. 고혈압·고지혈증을 앓던 A(92)씨는 지난해 9월 코로나에 감염돼 재택치료를 받았다. 팍스로비드·스테로이드 치료 덕분에 금세 회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2~3주 지나자 밤에 땀이 나고, 식욕이 떨어지고,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점점 식사가 어려워졌고 거동이 불편해졌다. 두 달 새 체중이 5kg 빠졌다. 다리에 힘이 빠져 외출하기 불가능해졌다. 우울증약을 먹고 있지만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가 악화해 치매약까지 먹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건강하다'평가받은 완치자 71명서 석달 후 53명

 코로나 노쇠 문제는 아직 국내에선 낯설다. 조금씩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대한의학회지에 실린 '코로나 후유증과 사회서비스 함의'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 82명의 코로나 완치자가 퇴원 석 달 후 임상노쇠척도(CFS)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척도는 활동·기능·독립거동 등을 평가해 노쇠 정도를 1~9단계로 나눈다. 단계가 높을수록 나쁘다. 코로나 입원 때 1단계(매우 건강)이던 31명이 퇴원 후 석 달 지나자 22명으로 줄었다. 2단계(건강) 40명이 31명으로 줄었다. 또 같은 기간 매우 활동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 8명 줄었다. 지난해 말 스위스 연구진이 'BMJ open respiratory research'에 발표한 논문도 비슷하다. 연구대상자 288명 중 21%가 감염 석 달 후 CFS가 4단계(취약) 이상이었다.
 정희원 교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감염병에만 집중할 뿐(완치자의) 기력 감퇴 예방에 신경 쓰지 않는다. 감염병 완치자의 운동·재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며,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고령화로 인해 노쇠 사망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노쇠 예방에 투자해야 사망률과 의료비를 줄이고 기능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쇠(frailty)=허약이라 하며 노화·질병으로 기능이 감퇴해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상태를 말한다. 같은 나이라도 노쇠가 심하면 노화가 더 진행된다. 정식 질병인데도 진단명으로 잡지 않아 진료 통계에 3829명(2021년)만 나온다. 일본은 사망원인 3위(2019년)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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