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586 정치의 몰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정치에디터

정효식 정치에디터

‘2021년 5·2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한때 민주당 내 586그룹의 리더로 꼽힌 송영길 전 대표가 정점으로 지목받고 있다. 송 전 대표는 체류 중인 프랑스 파리에서 “나는 모르는 일” “개인 일탈”이라고 했지만 당이 직면한 위기는 이재명 대표 한 명에 초점이 맞춰진 대장동 사법리스크와 차원이 다르다. 측근인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통화 녹음 파일에서 돈 봉투를 받은 의원 10여명의 이름까지 돌며 당이 풍비박산할 지경이 됐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체류 중인 프랑스 파리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뉴스1]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체류 중인 프랑스 파리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는 원래 586그룹 맏형 격으로 운동권 출신 정치인 가운데서도 입지전적 경력의 소유자다. 1984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구속·제적된 뒤 87년 민주화로 복적해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대우차 인천부평공장 용접공을 시작으로 인천시 택시노조 활동 등 노동운동도 벌였다.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노선을 바꿔 2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전국민주택시노조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김대중 정부 새천년민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된 뒤 17·18·20·21대까지 5선 의원과 인천광역시장을 지냈다. 이런 경력에도 당내 선거에선 이상하게도 원내대표 한 번 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를 안타깝게 여겨 취임 직후 러시아 특사와 석 달 뒤 장관급인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자리를 줬다고 한다.

그런 그가 친문 주류가 밀던 홍영표 의원에 0.59%포인트 차로 신승한 문제의 5·2 전당대회는 친문→친명으로 민주당 주류 세력이 교체하는 계기가 된 선거였다. 같은 해 10월 10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후보 측의 “결선 투표” 주장을 일축하고 중도 사퇴 후보의 득표를 무효표로 처리해 이재명 후보 선출을 확정 지었다. 이듬해 대선 패배 이후엔 자신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대신 이 대표에 지역구(인천 계양을)를 내줘 당을 장악할 수 있도록 산파역도 했다.

이 때문에 당내 비명계에선 “이심송심(李心宋心)하며 이낙연 전 총리를 축출하고 이재명 대표의 당 장악을 돕더니 이제 와 보니 돈 봉투로 대권·당권을 매수한 것 아니냐”는 개탄이 나온다. 반면에 586그룹 일부에선 “금액이 식대·기름값 수준인 데 검찰 독재정권과 투쟁하기 위해 동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300만원 돈 봉투 한건으로 2012년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하고 징역형을 받은 박희태 전 의장과 같은 변명까지 하는 걸 보니 586 정치가 이제는 끝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