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자신이 감각하는 세상을 작품에 투영한다. 홍상수 감독의 29번째 장편영화 ‘물안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연기를 포기한 젊은 배우가 전 재산을 털어 단편영화를 찍기로 한다. 카메라맨·여배우와 셋이 제주도로 가지만 막상 뭘 찍을지 몰라 배회한다. 그런 모습이 일부러 초점을 빗맞힌 흐릿한 화면에 담긴다. 상영시간 61분 전체가 통째로 물에 잠긴 듯 뿌옇게 흘러간다.
올 초 베를린영화제에선 ‘인상주의 회화 같은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재밌게도 이처럼 불분명한 이미지가 관객의 더 적극적인 해석을 자극한다. 처음엔 눈이 잘못된 줄 알고 비벼보다가, 결국 제목이 왜 ‘물안에서’였는지 곱씹게 된다는 어느 관람객 후기처럼. “더 늦기 전에 내 걸 만들고 싶다”고, 바다를 바라보며 자꾸 ‘마지막’을 떠올리는 주인공의 무의식 속 이야기는 화면이 점점 더 흐려질수록 더 선명하게 들려온다. 홍 감독의 쇠약해진 시력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도 존재한다. 그는 영화 ‘오! 수정’(2000) 촬영 때 눈병이 나 수술한 이후 시력이 떨어져 왔다.
홍 감독 본인은 베를린영화제 상영 후 단 한 차례 관객과의 대화에서 “선명한 이미지에 신물이 났다”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는 2017년 배우 김민희와 연인 사이를 밝힌 후 구설로 더 시끄러워지자 언론 인터뷰를 일체 거절해 왔다. 그러고 보면 ‘물안에서’는 최근 그의 어떤 영화보다 영화 자체로 주목받고 있다. 진정 그의 영화를 보려는 관객만이 흐린 화면을 뚫고 의미를 찾아낸다. 어쩌면 그가 진정 원했던 바였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