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인천공항, 폴란드 8000억 투자 추진…"돈 회수 불투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폴란드가 바르샤바 인근에 지으려는 신공항 조감도. [출처 폴란드 신공항 홈페이지]

폴란드가 바르샤바 인근에 지으려는 신공항 조감도. [출처 폴란드 신공항 홈페이지]

 인천공항이 폴란드가 건설하려는 신공항에 8000억원 가까운 지분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비 회수 방안이 불명확해 위험성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신공항 운영권도 확보하지 못한 채 사실상 지분율에 따른 주주 배당금에만 의존하는 사업 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투자계획에 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공기업 예비타당성조사(공타)에서 사업성이 낮다는 중간 결과가 나온 사실도 확인됐다.

 18일 국토교통부와 인천공항 등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는 총 14조원을 들여 현재 수도공항인 바르샤바공항을 대체하기 위한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신공항 예정지는 바르샤바로부터 서쪽으로 37㎞가량 떨어져 있으며, 2028년 하반기에 1단계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폴란드, 수도 인근 대형 신공항 건설  

 폴란드 측은 1단계로 연간 여객 4000만명, 최종단계에서는 1억명을 처리하는 규모를 구상 중이며 신공항을 헝가리·체코 등을 아우르는 중동부 유럽의 허브공항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신공항과 서유럽 사이엔 별도로 유럽연합(EU) 자금을 지원받아 대규모 고속철도망도 연결될 예정이다.

폴란드 신공항 위치도. [자료 인천공항]

폴란드 신공항 위치도. [자료 인천공항]

 신공항 사업을 위해 폴란드 정부는 특수목적법인인 CPK를 설립했으며, 전체 사업비의 40%가량인 6~7조원을 자기자본으로 하고 나머지 60%를 차입해서 조달할 방침이다. 자기자본 중 51%를 폴란드 정부가 투자하고, 나머지 49%는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로 충당하게 된다.

 인천공항이 바로 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지분의 12.5%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금액으로는 7500억~8000억원 사이로 인천공항이 앞서 했던 러시아 하바롭스크공항(70억원)이나 인도네시아 바탐공항(500억원) 투자보다 최대 100배가 넘는다.

 현재 프랑스 방시그룹과 호주의 한 금융사도 각각 전략적·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종적인 결정은 5월 중에 이뤄질 전망이다.

 인천공항, 지분 12%가량 투자 추진  

 김범호 인천공항 미래사업본부장은 “폴란드는 지정학적 위치가 좋고 경제 성장세도 뚜렷하다”며 “폴란드 신공항 투자를 통해 우리 공항운영시스템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고, 향후 중동부 유럽의 다른 공항사업에도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 규모에 비해 회수방안이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공항 소유주로부터 고정적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공항 운영권을 따낼 가능성이 낮다. 공항 건설과 운영 전반에 공동 참여하는 전략적 투자자라고는 해도 지분율이 10%대 초반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신 인천공항은 투자를 개시하고 10년 뒤인 2035년부터 운영수익을 배당받기 시작해 9~10년 후면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투자수익률은 11%로 잡고 있다. 만일 배당금만으로 투자비 회수가 안 되면 2044년께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나머지 부족분을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인천공항이 폴란드 신공항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인천공항이 폴란드 신공항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그리고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시 신공항 건설·운영 관련 컨설팅(700억원)과 체크인시스템 납품(1400억원) 등을 통한 추가 수입도 기대하고 있다. 이 역시 유동적이지만 설령 이뤄지더라도 실제 인건비와 체재비, 시스템 제조원가 등을 고려하면 실제 수익 규모는 크지 않다는 계산이다.

 투자비 회수는 주주 배당금에 의존  

 무엇보다 인천공항의 회수방안은 폴란드 신공항이 당초 계획대로 막힘없는 성장을 계속 이어간다는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만 가능한 것이어서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항업계 관계자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등 이미 허브공항을 가진 나라들에서 폴란드 신공항이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걸 그저 지켜만 보겠느냐”며 “경쟁 공항과 항공사들의 견제가 시작되면 상당 기간 수익을 내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배당 규모도 문제지만 지분 매각 역시 신공항 운영이 어려워진 상황이 되면 성사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 규모보다 전반적으로 회수 방안이 부실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폴란드 신공항의 사업성에 대한 전망 자체도 엇갈린다. 인천공항은 폴란드 신공항이 현재 바르샤바공항의 여객수요(연간 2000만명)를 그대로 가져오는 데다 주변 국가의 항공 수요도 흡수할 수 있어 2060년엔 연간 여객 6000만명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공타, "사업성 낮다" 중간 결론   

 그러나 올 초 시작된 기획재정부 공타의 중간 결과는 부정적이다. 현행 규정상 공공기관 사업 중 총 사업비가 1000억원 이상이고, 정부 지원금과 공공기관 부담액의 합계액이 500억원 이상인 신규 투자사업은 공타를 통과해야만 한다.

 최근 KDI가 주관한 공타 중간보고회에서는 인천공항이 예상하는 폴란드 신공항의 여객수요가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공항이 생김으로써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유발수요'를 이례적으로 전체의 30% 넘게 책정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또 신공항에 대규모 고속철도망이 연결되는 것 역시 항공 수요를 늘리기보다는 감소 쪽으로 영향을 줄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실제로 국내에선 고속철도 개통 이후 지방공항과 서울을 오가는 국내선 여객이 급감했다.

프랑스는 열차로 2시간대에 오갈 수 있는 단거리 구간의 항공편을 폐지키로 했다. 사진은 프랑스 고속열차들. 연합뉴스

프랑스는 열차로 2시간대에 오갈 수 있는 단거리 구간의 항공편을 폐지키로 했다. 사진은 프랑스 고속열차들. 연합뉴스

 해외에선 프랑스가 지난해 열차로 2시간 30분 안에 이동이 가능한 도시를 운항하는 항공편을 폐지키로 했다. 항공기 운항에 따른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한편으로는 단거리 구간에서는 항공이 고속열차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인천공항은 KDI가 폴란드 신공항의 수요를 너무 보수적으로 적게 잡았다며 추가자료 제출 등을 통해 바로 잡겠다는 방침이지만 공타는 정해진 평가 기준이 있기 때문에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투자 계획 더 깐깐하게 짚어봐야"  

 상황이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세부 사항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투자비 회수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 뒤에야 인천공항에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국토부는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폴란드 신공항 수주 지원단을 폴란드에 파견한 바 있다.

 이번 투자 계획을 둘러싼 또 하나의 걸림돌은 인천공항의 리더십 부재다. 폴란드 신공항 투자건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김경욱 인천공항 사장이 이달 말로 사퇴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김경욱 인천공항 사장은 이달 말에 퇴임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김경욱 인천공항 사장은 이달 말에 퇴임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이렇게 되면 이희정 인천공항 부사장이 사장 직무대행을 맡게 될 예정이지만 직대 체제에서 인천공항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를 책임지고 결정하기는 무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전후 사정 때문에 더 늦기 전에 폴란드 신공항 투자를 두고 제기된 문제점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사업성도 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 전문가는 “폴란드 정부는 투자유치를 위해서라도 신공항에 대해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 있지만, 공기업인 인천공항은 투자자 입장에서 좀 더 깐깐하게 검토하고, 부정적인 면도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