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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보행도로 쓰이는데 세금 17억"…현장검증 나선 法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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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연합뉴스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 김정웅 판사는 IBK기업은행이 서울 중구청을 상대로 낸 재산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서울 중구청은 2018년 을지로2가 기업은행 본점과 건너편 IBK파이낸스타워 일대 기업은행 소유 땅에 대해 재산세와 지방교육세 등 약 17억원을 부과했다. 기업은행은 이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워낙 많은 시민들이 걸어다니는 땅이어서 공익을 위해 쓰이고 있다는 취지였다. 지방세법에 따르면 공용·공익에 제공되는 땅은 비과세 대상이다.

조세심판원과 중구청은 이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6700여만원의 세액을 줄였다. 하지만 본점 건물 앞 두 곳과 IBK파이낸스타워 앞 한 곳에 대해서는 재산세를 그대로 부과했다. 건물 앞 땅은 은행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개방한 땅이지 공적인 통행로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러자 기업은행은 이들 땅에 대해서도 세금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2020년 6월 소송을 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현장 검증을 한 끝에 기업은행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논란이 된 세 곳과 인접한, 기업은행 땅이 아닌 공도(公道)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화단과 버스정류장, 가로수, 자전거 거치대 등이 설치돼 정작 ‘보행도로’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보행자가 공도만 이용해 지나다니는 것은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라며 “실제로 보행자들은 공도가 아닌 기업은행 땅을 주된 통행로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도와 기업은행 땅의 포장재료가 같은 데다 단차가 없고, 공도에서 시작된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이 기업은행 땅 위에도 이어져 깔린 점도 고려했다.

재판 과정에서 중구청은 “기업은행이 이 땅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부지에 기둥이나 구조물이 있어 은행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기업은행이 해당 땅을 독점해 통행에 제약이 생기면 상당한 민원 제기가 예상된다”며 “기업 이미지 훼손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점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중구청이 걷을 수 있는 정당 세액을 다시 계산했고, 중구청이 6300여만원의 재산세를 더 걷었다고 봤다. 지난달 중구청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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