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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공짜 동영상’은 마약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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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누누티비 광풍이 휘몰아쳤다. 제2, 제3의 유사 범죄에 대한 우려도 일고 있다. [그래픽=한호정]

누누티비 광풍이 휘몰아쳤다. 제2, 제3의 유사 범죄에 대한 우려도 일고 있다. [그래픽=한호정]

이름이 번지르르하다. ‘스튜디오유니버설(Studiouniversal)’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지난 14일 0시부터 서비스를 종료한 불법 온라인 스트리밍(OTT) 사이트 누누티비를 운영하는 곳이다. 과대망상증 비슷한 게 느껴진다.
 서비스 종료 안내 문구는 한술 더 뜬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많은 사용자들께서 입으셨을 상실감을 저희가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여러분 모두 하시는 일마다 두루 잘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깍듯해 보이지만 고양이 쥐 생각하기와 다름없다. 도둑질로 돈을 벌면서 고객을 위로하는 척한다. 적반하장이다.

불법 사이트 누누티비 사라질까
제2, 제3의 유사범죄 나올 수도
공짜 중독 씻어내야 K컬처 성장

 사실 누누티비를 몰랐다. 지난달 초 미디어 업계가 이곳을 고발하고,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알게 됐다. 2021년 6월 서비스를 시작했으니 2년 조금 안 되게 활동한 셈이다. 올 2월 기준 조회 수 15억, 월 이용자 수 1000만, 피해 규모 5조원이라니 그 수치만으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누누티비는 광고로 돈을 번다. 그것도 온라인 도박 사이트 광고다. 도미니카에 서버를 두고, 수시로 도메인을 바꾸며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왔다. 그간 거둬들인 수입을 알 순 없지만 “걷잡을 수 없는 트래픽 요금 문제”로 문을 닫는다고 하니 이제 지출이 수입을 앞지른 모양이다. 또 다른 이유로 든 “전방위 압박”은 구실에 가깝다. 범죄는 언제나 돈을 쫓아가니까….
 누누티비는 디지털 시대의 독사과다. 이른바 초연결 사회, 온라인 범죄는 진즉에 국경을 무너뜨렸다. 최근 강남 학원가에 뿌려진 마약음료, 그 충격적 사건 뒤엔 중국에서 암약하는 보이스피싱단이 있었다. 동영상 무료 시청을 미끼로 내건 누누티비의 범행 양식과 유사하다.
 도박과 마약은 흔히 같이 붙어 다닌다.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현재 국내 불법 도박 사이트는 3만여 개에 이르며,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 누누티비의 직접 피해자인 드라마 ‘카지노’ 마지막 대목이 상징적이다. 오프라인 도박과 온라인 도박의 선수 교체를 암시했다. ‘뛰는 경찰, 나는 범죄’가 가속할 조짐이다. 열 포졸이 지켜도 도둑 하나 잡기 어려우니까….
 누누티비는 영화·드라마 등 콘텐트 산업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누누티비는 자취를 감췄어도(감춘 척했어도?) 제2, 제3의 ○○TV, △△TV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월 방문객 3500만이란 기록적 수치를 남긴 불법 웹툰 사이트 ‘밤도끼’는 2018년 폐쇄됐으나 이후 ‘○토끼’ ‘△토끼’ 등이 속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합법 사이트의 웹툰 트래픽이 286억8000만 회인 데 반해 불법 트래픽은 그보다 많은 334억2000만 회였다. K콘텐트의 젖줄로 떠오른  웹툰인데 말이다. 지속적 감시와 단속은 기본이요, 국제 공조수사도 필수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다. 『2022 저작권 연차보고서』를 보면 불법 복제물 이용률이 22%(2019)→20.5%(2020)→19.8%(2021)로 조금씩 낮아졌다. 무료 사이트가 차단될 경우 정식 사이트를 이용하겠다는 응답도 같은 기간 17.6%에서 30.7%로 늘었다. 반면에 다른 경로를 찾겠다는 반응 또한 8%에서 9.4%로 증가했다. 아직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까진 갈 길이 멀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다. 코로나19 ‘집콕’ 문화를 먹고 자란 OTT 전성시대, 볼 것은 천지인데 지갑은 홀쭉해졌으니 공짜의 유혹을 참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는 문화를 망치는 마약이다. 당장 올 1분기 한국 영화 점유율이 29%로 주저앉았다. OTT의 약진과 불법 콘텐트 영향이 크다. 제2의 ‘기생충’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비관마저 나온다. 문화의 주인인 소비자의 선택을 믿는다. 불법 다운로드로 고사 직전까지 갔던 K팝도 다시 살린 우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