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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권의 미래를 묻다

초전도체, 인류 문명의 ‘퀀텀 점프’ 위한 결정적 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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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영화 ‘아바타’는 현재까지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올린 영화이자 특수효과의 한 획을 그은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제이크 설리가 공중에 떠 있는 산에 올라가 용과 같은 생물인 토루크를 길들이는 장면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어떻게 산이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을까.

사실 산이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영화의 핵심적인 배경이다. 나비 족의 행성 판도라에는 ‘언옵테늄’이라는 광물이 있다. 이 광물은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다. 초전도체는 자석 위에서 공중에 뜰 수 있다. 전문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른다. 영화에서는 언옵테늄을 다량 함유한 산이 자기장이 강하게 소용돌이치는 지역에서 공중에 뜨는 것으로 묘사된다. 인류는 상온 초전도체를 빼앗기 위해서 판도라에 온 것이다. 최근에 물리학계는 강한 압력 아래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상온 초전도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들끓었다.

초전도체는 그렇게 중요한 물질일까. 그렇다. 초전도체는 중요하다. 초전도체는 우주가 인류로 하여금 우주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깔아 놓은 사상 최대의 복선이자, 인류 문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결정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전기 저항 0의 상태인 초전도체
전류 가장 잘 흐를 수 있는 물질
자석 위에서 공중에 뜰 수 있어
양자컴퓨터·핵융합발전에 필요

양자역학을 암시하다

영하 200도의 초전도체 위에 영구자석이 떠 있다. [중앙포토]

영하 200도의 초전도체 위에 영구자석이 떠 있다. [중앙포토]

초전도체는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이케 카메를링 온네스가 처음 발견했다. 온네스는 당시 본인이 개발한 헬륨의 액화 기술을 이용해서 다양한 물질이 저온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절대온도 4K 근처에서 갑자기 수은의 전기 저항이 정확히 0으로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은이 초전도체가 된 순간이었다. 참고로, 절대온도란 섭씨 영하 273.15도를 기준 원점으로 삼는 온도의 한 측정 방법이다. 절대온도의 단위는 K로 표시되며 ‘켈빈’이라고 읽힌다. 절대 온도 4K는 섭씨 온도로 대략 영하 269도에 해당한다.

온도가 낮아질수록 열적 요동은 줄어든다. 따라서 낮은 온도에서 도체의 전기 저항이 줄어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전기 저항이 정확히 0이 되는 것은 당시의 지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아직 양자역학이 정립되기 전이었다. 양자역학은 1920년대 후반에 정립되었으며, 인류는 양자역학 이후로도 1957년까지 3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저온에서 발생하는 초전도체는 3명의 창시자의 이름을 딴 ‘바딘-쿠퍼-슈리퍼’(Bardeen-Cooper-Schrieffer), 줄여서 BCS 이론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BCS 이론은 다음과 같다. 우주에는 ‘보손’과 ‘페르미온’이라는 두 종류의 입자가 있다. 보손은 서로 뭉치고, 페르미온은 서로 밀어낸다. 전자는 페르미온이다. 전자는 서로 부딪히고 밀어내며 전기 저항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전자 2개가 하나의 쌍으로 결합하면 보손이 된다. 보손이 된 전자쌍(전문 용어로 쿠퍼쌍)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하나의 거대한 양자 상태로 뭉칠 수 있다. 이때 전기 저항은 0이 된다.

‘우주의 비밀’ 품은 초전도체

초전도체는 양자역학 외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우주의 비밀을 품고 있다. 그 비밀은 바로 입자가 질량을 갖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놀랍게도, 앞서 언급한 마이스너 효과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마이스너 효과는 자기장을 포함하는 광자가 초전도체 안에서 질량을 갖게 되는 현상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질량은 기본적으로 마이스너 효과를 확장한 메커니즘, 즉 ‘힉스 메커니즘’에 의해서 발생한다. 힉스 메커니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우주의 모든 근본적인 입자를 설명할 수 있는 표준 모형의 뼈대가 된다. 결국, 힉스 메커니즘은 2013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라는 입자 가속기에서 실험적으로 검증되었으며, 이에 대한 공로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는 당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여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 입자를 빠르게 가속하기 위해서는 매우 강한 자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석은 도선을 원형으로 감은 전자석의 형태로 얻어진다. 강한 전자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류를 잘 흘릴 수 있는 도선이 필요하다. 전류를 가장 잘 흘릴 수 있는 물질은 다름 아니라 바로 초전도체다. 결론적으로, 대형 강입자 충돌기는 초전도체에서 영감을 받은 힉스 메커니즘을 검증하기 위해 초전도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실험 장치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이라는 선물을 줌으로써 인류 문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것은 물론 신화다. 반면, 초전도체는 우주가 인류에게 주는 진정한 선물일지 모른다. 초전도체는 핵융합발전에서 플라스마를 ‘토카막’이라는 장치 안에 가두기 위해 필요한 결정적 도구이며, 양자컴퓨터를 구성하는 큐비트를 물리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시스템 중의 하나다. 무한 청정 꿈의 에너지라는 핵융합 발전과 슈퍼컴퓨터로도 몇 년씩 걸리는 데이터 처리를 몇 초 만에 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는 그 날, 인류는 문명사 최고의 퀀텀 점프를 맞게 된다.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