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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암세포만 정밀 타격 ‘중입자 치료’…난치성 암 환자 희망 정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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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면

병원 탐방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

고정형·회전형 치료기 총 3대 설치
정상 조직 손상 적어 부작용 감소
치료 효과 X선보다 2~3배 우수

연세암병원 이익재 중입자치료센터장은 “중입자 치료는 기존 치료에 한계를 보인 암 환자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성욱 객원기자

연세암병원 이익재 중입자치료센터장은 “중입자 치료는 기존 치료에 한계를 보인 암 환자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성욱 객원기자

연세의료원에 설치된 중입자 가속기.

연세의료원에 설치된 중입자 가속기.

암 환자 10명 중 7명은 완치하는 시대다. 이제 이들은 치료 효과는 기본이고 고통과 부작용을 덜 느끼는 치료법을 찾아 나선다. 현재 암 치료는 크게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세 가지다. 여기에 최근 중입자 치료가 암 치료의 새로운 선택지로 떠올랐다. 현존하는 최고의 암 치료 기법으로 통하는 중입자 치료는 암 환자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국내에서 중입자 치료 첫선을 보일 곳은 연세의료원이다. 연세의료원에 설치된 중입자 치료기는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정형(1대), 회전형(2대) 치료기를 활용해 총 3개의 치료실을 운영할 예정이다. 상반기 중 고정형 치료기를 가동해 전립샘암부터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 힘든 환경에서도 강력한 효과

중입자 치료는 탄소 입자를 이용한 방사선 치료의 하나다.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면 탄소 빛(빔)은 암세포를 제거할 파괴력을 갖는다. 바로 이 탄소 빛으로 암덩어리에 0.1㎜ 수준까지 정밀하게 조준 타격하면 암세포 유전자가 끊어지고 사멸된다. 중입자의 생물학적 효과는 X선보다 2~3배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부작용도 적은 편이다. 방사선은 입자 없이 에너지만 발산하기 때문에 인체에 들어오면 점차 에너지가 감소한다. 암 환자에게 몸속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X선을 조사하면 처음 인체와 접촉하는 피부와 주변의 정상 조직이 더 많은 방사선량을 받는 이유다. 반면에 중입자는 입자가 직접 DNA를 타격해 세포를 손상한다. 목표한 특정 깊이에 도달하면 바로 그 지점에서 에너지를 전부 폭발시키고 사라진다. 연세암병원 이익재 중입자치료센터장은 “기존의 방사선 치료보다 암세포는 훨씬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만, 중입자가 지나가는 정상 조직의 손상은 적어 치료로 인한 부작용 발생을 줄일 수 있다”며 “정상 조직에 영향이 덜해 이차암 발생 가능성도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중입자는 치료가 까다로운 환경에서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기존의 X선은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 암세포의 DNA를 효과적으로 파괴하지 못한다. 저산소 암세포는 산소가 부족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만큼 강력한 생명력을 보인다.
강한 방사선 조사량을 견뎌내고 항암 약물도 침투가 어려워 치료하기가 까다로웠다. 하지만 중입자 치료는 암세포 주변의 산소량이 적더라도 암 조직을 사멸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치료는 전립샘암부터다. 암세포가 해당 장기에만 국한돼 있는 1~3기 환자가 대상이다. 중입자 치료 선도국인 일본에서도 중입자 치료를 받는 사람의 25~30%가 전립샘암 환자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두 번째 암종일 정도로 이미 치료 효과가 입증됐다. 국소 전립샘암에서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생화학적 무재발률이다. 생화학적 재발은 혈액검사에서 전립샘 특이항원(PSA) 수치가 최저치보다 2ng/mL 이상 상승한 상태다. 재발 위험이 가장 높은 고위험군 전립샘암의 경우 5년 생화학적 무재발률이 중입자 치료에서 일관적으로 90% 이상으로 보고된다. 전립샘암 치료 후 나타날 수 있는 혈변·빈뇨·절박뇨·혈뇨 등 소화기계·비뇨기계 부작용 발생률도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중입자 치료기는 고정형과 회전형(갠트리)으로 나눈다. 회전형은 360도 회전하며 중입자를 조사하기 때문에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암세포 사멸에 최적화한 방향과 위치에서 맞춤형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어느 방향에서든지 암세포에 집중적으로 조사할 수 있으므로 평균 치료 횟수를 줄이는 데도 도움된다. 기존의 방사선 치료는 평균 25차례 시행되므로 치료 기간이 한 달가량 소요됐지만, 중입자 치료는 평균 12차례 시행된다. 치료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편리해 환자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

암세포 잡을 최적의 방향·위치 선정

특히 회전형 치료기를 2대 선보이는 건 연세의료원이 최초다. 전 세계적으로 회전형 치료기가 도입된 곳은 일본 2곳, 독일 1곳이다. 이들 3곳도 1대씩이다. 갠트리 시스템 역시 기존의 다른 치료기보다 크기가 작고 무게는 가볍다. 크기가 작은 만큼 회전이 빨라 치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 센터장은 “기존 치료기보다 중입자 조사 부분의 스캐닝 정밀도 및 효율을 높였다”며 “환자 호흡에 따라 달라지는 종양 위치를 분석해 중입자 조사의 정확도를 높이는 호흡 동조 치료 역시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입자 치료 혜택을 받기 위해 일본·독일 등지로 해외 원정을 떠날 경우 소요 비용만 1억~2억원에 달했다. 연세의료원이 상반기 중입자 치료를 전개함으로써 난치성 암 환자들에게 희망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세암병원 최진섭 원장은 “중입자 치료는 췌장암·폐암·간암 등 여러 고형암에서 생존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골·연부조직 육종이나 척삭종, 악성 흑색종 등 희귀암 치료는 물론이고 기존 치료 대비 낮은 부작용과 뛰어난 환자 편의성으로 전립샘암 치료에서도 널리 활용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암 치료 역량 끌어올려, 중증 난치성 질환 극복 계기 마련할 것”

인터뷰 이익재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장

연세암병원 중입자치료센터는 올 상반기 고정형, 하반기 회전형 치료기 가동을 준비 중이다. 전립샘암을 시작으로 치료 대상 암종을 점차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연세암병원 이익재(사진) 중입자치료센터장에게 준비 현황과 계획을 들었다.

-환자·보호자들의 관심이 많다.
“중입자 치료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콜센터로 하루 150통 정도의 문의 전화가 온다고 한다. 환자의 질병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중입자 치료 가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치료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다른 치료법 대비 중입자 치료가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되는지 여러 측면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가동률을 80%로 계획했을 때 연간 약 1000명의 신규 환자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환자 선정과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기존처럼 협진이나 다학제 진료를 시행한다. 환자 개인마다 병의 진행이 어느 정도인지, 암이 어떤 장기에 근접해 있는지, 항암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또 중입자 치료는 다른 치료법과 병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으므로 진료과 간 협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암별로 중입자 치료 프로토콜을 만들고 있으며 계속 논의 중이다. 중입자 치료 경험이 많은 일본은 치료 프로토콜이나 보험 기준이 이미 정립돼 있어 이 역시 참고할 예정이다.”

-중입자 치료에 대한 기대 효과는.
“기존의 방사선·항암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고 수술 대상은 아닌 환자들이 꽤 있다. 이런 환자들에게 중입자 치료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일반 치료법에 잘 안 듣는 암에서 중입자 치료가 좀 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 놓인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센터의 목표는 뭔가.
“연세의료원이 중입자 치료기를 도입하면서 암 치료를 위한 거의 모든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중입자 치료도 암 치료의 또 다른 선택지로서 다양한 다학제적 치료가 가능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단순한 첨단 기기 도입을 넘어 암 치료의 수준과 역량을 끌어올리고 중증 난치성 질환 극복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의료원의 암 치료 명성을 이어나가는 데 일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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