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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상륙한 부산, 드림씨어터 4년만에 '뮤지컬 도시'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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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호 19면

제2 뮤지컬 도시 부산   

13일 150만 관객을 맞은 ‘오페라의 유령’ 공연 직후 관객들과 팬텀 마스크 세리머니를 한 조승우. [사진 클립서비스]

13일 150만 관객을 맞은 ‘오페라의 유령’ 공연 직후 관객들과 팬텀 마스크 세리머니를 한 조승우. [사진 클립서비스]

지난달 말 부산에서 개막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13일 누적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 뮤지컬계 ‘살아있는 전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공연예술의 성지와도 같은 파리오페라극장을 소재로 작곡한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다. 1986년 런던, 1988년 뉴욕 초연 이래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갖고 있고, 전세계 188개 도시에서 17개 언어로 꾸준히 공연돼 왔지만, 한국어 공연은 2001년과 2009년 이래 처음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장이란 곳이 무대 이면에 얼마나 커다란 세계와 많은 사람의 꿈을 품은 공간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지난 1일 개관 4주년을 맞은 부산 드림씨어터에 등장한 ‘팬텀(유령)’이 배우 조승우라 더욱 특별했다. 2001년 초연 당시 신인이었던 조승우가 귀족 청년 라울 역에 캐스팅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출연이 불발됐고, 20여년 세월이 흐른 뒤 최고 스타가 되어 팬텀 역에 캐스팅된 것.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팬텀 역을 연기하는 조승우. [사진 클립서비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팬텀 역을 연기하는 조승우. [사진 클립서비스]

우려도 있었다. 제목부터 ‘오페라의 유령’인 만큼 팬텀 역은 통상 성악가 차지다. 월드클래스 바리톤 김주택을 비롯해 최재림·전동석 등 다른 ‘팬텀’도 모두 성악 전공자다. 하지만 조승우의 무대는 팬텀의 스테레오타이프를 잊게 했다. 대리석 조각상처럼 매끈한 벨칸토 발성은 아니지만 특유의 섬세한 연기가 실린 그의 가창은 ‘새로운 팬텀’의 시대를 예감케 했다. 객석의 열기도 뜨거웠다. 공연 직전 만난 중학생 김수현(부산 진구) 양은 “대극장 공연 관람이 처음이라 할머니랑 보러 왔다”면서 “뮤지컬 동아리에 들 정도로 뮤지컬을 좋아하는데 조승우 배우를 보게 되어 설렌다. 티켓 오픈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다가 피켓팅에 성공했다”며 한껏 들떠 있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사진 클립서비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사진 클립서비스]

이번 시즌이 흥미로운 건 부산에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부산 최대 뮤지컬 전용관인 드림씨어터에서 11주간 지역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다. 부산은 도시 규모에 비해 뮤지컬 시장이 작았다. 대극장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1000석 이상 공연장이 서울 25개, 대구 8개인데 부산은 5개로, 2018년만 해도 한해 뮤지컬 공연 횟수가 대구의 절반이었다. 그런데 2019년 공연기획사 클립서비스가 부산 남구 국제금융센터에 드림씨어터를 개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객석 수 1727석, 넓이 760㎡×높이 27m의 무대, 총 85개의 배튼(무대 장치 걸이대), 서라운드 스피커의 입체 음향까지, 샤롯데씨어터·블루스퀘어 같은 서울의 전용관에 맞먹는 스펙을 갖추고 지난 4년간 ‘라이언 킹’ ‘위키드’ 등 세계적인 걸작들을 선보였다.

이제 부산은 대구를 제치고 서울을 제외한 지역 관객 1위 시장으로 부상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부산 개막 뮤지컬 편수는 166편, 대구는 160편이었고, 티켓 판매액은 부산이 220억대, 대구가 145억대였다. 대구는 2007년부터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주최해 ‘뮤지컬 도시’로 불려왔지만 아직 전용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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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연시장은 수도권 편중이 고질적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2022년 총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서울지역 공연건수가 전체의 43%, 티켓예매수는 67%, 티켓판매액은 80%다. 특히 전체 매출의 79%를 차지하는 뮤지컬 장르 매출액의 75%가 수도권에서 발생한다. 통상 뮤지컬 지방 투어는 주말 3~5회 공연에 그친다. 관객 저변이 넓지 않아서인데, 공연이 없으니 관객도 늘지 않는 악순환이다.

이러니 산업 전체의 발전이 더디다. 창작 실험마저 제작비가 비싼 서울에서 하니 리스크가 크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지방 공연이 부동산 떴다방처럼 치고 빠지는 식이면 시장 형성이 어렵다”면서 “워싱턴·시카고에서 트라이아웃으로 검증된 콘텐트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것처럼, 지역에서 이슈몰이를 한 콘텐트가 숙성된 시장인 서울로 오는 것이 산업적인 흐름에 맞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변화 추세가 읽힌다. 서울의 티켓 예매수 비중이 2020년 83%, 21년 71%, 22년 67%로 줄고 있고, 티켓판매액 비중은 20년 88%, 21년 81%, 22년 75%로, 지난 3년간 서울 집중이 완화되고 있다. 지역별 티켓 1매당 평균 판매금액도 흥미롭다. 부산의 뮤지컬 장르가 약 6만 8천원으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서울의 뮤지컬 장르로 약 6만 6천원이다. 부산의 대극장 뮤지컬이 공연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셈인데, 과감한 장기공연 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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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꾸준히 대작들의 5~6주 공연을 시도해온 드림씨어터는 현재 활동 중인 멤버십 회원만 5만2000명이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은 타 지역 예매자가 40%다. 경기도에서 온 20대 여성 관객은 “그동안 드림씨어터에 가끔 왔다. 이번에도 조승우 공연을 기다릴 수 없어서 친구와 여행을 겸해 왔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에서 온 30대 여성은 “뮤지컬 팬이라 여러 번 왔다. 드림씨어터가 생기기 전에는 서울까지 공연을 보러 갔는데, 서울 공연장과 비교해 손색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의 관전포인트도 산업적 효과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국내 초연 당시 새로 지어진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7개월 장기공연에 성공하며 ‘뮤지컬 불모지에서 산업을 일으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과연 부산에서도 장기 공연이 성공하고, 산업 발전으로 이어질까. 제작사 측은 무대 세트를 압축했던 투어 공연과 달리 장기 프로덕션을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브로드웨이 스케일 그대로 온전한 감동을 추구한 것이다. 객석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1톤짜리 샹들리에나 무대 상단 조각상을 타고 팬텀이 나타나는 등 원전의 명장면을 그대로 재연하기 위한 세팅에 8주가 걸렸다. 설도권 클립서비스 대표는 “1년 내내 쉴 수 없는 서울의 뮤지컬 전용관에서는 불가능하다. 같은 수준의 설비를 갖춘 전용관이 지역에 있기에 이번 프로덕션이 가능했다. 이어지는 서울 공연에는 이 세팅 그대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림씨어터를 운영하는 클립서비스 설도권 대표. [사진 클립서비스]

드림씨어터를 운영하는 클립서비스 설도권 대표. [사진 클립서비스]

공연기간까지 거의 20주 동안 200여명의 인력이 부산에 상주하니 경제 파급 효과도 있다. 신동원 프로듀서는 “2000년대 초부터 지역 공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2019년 이후 부산에서 세계적인 공연에 대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는 ‘오페라의 유령’ 100회 공연인 만큼 마켓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탄탄한 인프라를 갖춘 ‘뮤지컬 도시 부산’의 탄생은 지역을 넘어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종원 교수는 “뮤지컬 산업 발전의 전제조건은 안정적인 공연장 확보”라면서 “드림씨어터의 성공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앞으로 광주, 대구에 제2, 제3의 드림씨어터가 들어선다면 대형 창작뮤지컬도 지역 트라이아웃 시장의 얼리어답터들에게 먼저 선보일 수 있다. 문화예술향유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도 건강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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