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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말라" 쑥대밭 경포 소나무, 90% 살려낸다는 기적의 방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 소나무 숲이 산불에 그을린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 소나무 숲이 산불에 그을린 모습. 박진호 기자

"그을린 나무 베어낼까 봐 한숨"

지난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 강원도지정 유형문화재인 ‘방해정(放海亭)’ 인근 울창한 소나무 숲. 지표화(地表火)로 아랫부분만 그을린 소나무 수십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지표화란 낙엽 등 지표면에 있는 연료가 불이 타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 수십 년씩 자란 소나무로 개중에는 양팔로 안아도 손이 맞닿지 않는 아름드리나무도 있었다.

주민 임동한(57)씨는 “수십 년 세월을 버텨온 소나무인데 불에 그을려 베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전 강릉 난곡동에서 시작된 이번 산불은 산림 179㏊를 태웠다. 불에 탄 나무는 강릉지역 특성상 대부분 소나무였다.

특히 피해가 큰 곳이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한 곳인 ‘경포 송림(松林)’이라 아쉬움이 더 큰 상황이다. 경포 송림은 경포호와 경포 해변에서 인접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이처럼 관광지 주변에서 산불이 발생하면 피해목 처리를 두고 논란이 빚어진다. 2019년 4월 발생한 속초ㆍ고성 산불이 대표적이다.

지난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 소나무 숲이 산불에 그을린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 소나무 숲이 산불에 그을린 모습. 박진호 기자

산불 나면 피해목 두고 민원 속출

당시 속초시 영랑호 주변 산불 피해 소나무를 베는 과정에서 민원이 쏟아졌다. 주민들은 “영랑호 주변 멀쩡한 나무를 왜 베어내는 것이냐”며 “잎이 푸르게 살아있는 나무까지 베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랑호 주변은 소나무가 많은 데다 산책로가 잘돼 있어 주민이 자주 찾는 곳이어서다. 경포 송림은 영랑호 주변보다 소나무가 더 울창한 곳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해부터 산불피해목 존치·처리를 할 수 있는 기준인 ‘산불 후 소나무 고사 여부 진단예측방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불 피해 나무는 피해 강도를 ‘심(深)ㆍ중(中)ㆍ경(輕)’으로 분류한다. '심'은 잎과 가지가 시커멓게 탄 것을, '중'은 잎 전체가 갈변한 상태를, '경'은 불이 스치고 지나가 대부분이 푸른 것을 말한다. 진단예측방법이 적용되기 전까진 많은 나무를 살려야 하는 ‘경’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했다.

지난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 소나무 숲이 산불에 그을린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 소나무 숲이 산불에 그을린 모습. 박진호 기자

피해 강도 ‘심(深)ㆍ중(中)ㆍ경(輕)’ 분류

진단예측방법은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강원석 박사팀이 만들었다. 강 박사팀은 2017년부터 ‘산불 지표화 피해지 소나무 피해목 고사 여부 판단 기준 연구’를 해왔다.

진단예측은 산불 피해목 ‘흉고직경(DBH)’과 ‘그을음 지수(BSI)’로 고사율을 알 수 있는 방법이다. 그을음 지수 산출 방법은 우선 산불 피해목을 동ㆍ서ㆍ남ㆍ북 4개 면으로 나눈다. 면별로 그을음 흔적 높이와 비율을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측정해 나온 값을 고사율 표에 대입해 생존확률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직경 44㎝에 잎이 푸르고, 지표면에서 동 1.8m, 서 1.8m, 남 0.8m, 북 1m 높이까지 그을린 나무의 경우 고사율 표에 대입하면 생존확률이 95~96% 수준으로 예측된다. 해당 연구는 특허등록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5년간 80% 소나무 살아남아 

진단예측방법은 실제 산불 피해지에서 연구했다. 2017년 5월 6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산불로 765㏊에 달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된 삼척시 도계읍 점리 일대다. 강 박사팀은 해발고도 800m 한 야산에 3개 구역(AㆍBㆍC)을 실험지역으로 선정한 뒤 잎이 타지 않은 353그루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지난해 3월 기준 69그루(19.5%)만 고사하고 284그루(80.5%)는 살아있었다.

강 박사는 “산불 피해목은 3년 정도 버티면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불이 난 뒤 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면 불이 나기 전 산림 상태로 돌아가는데 최소 30년이 필요하다”며 “산불 후 소나무 고사 여부 진단예측방법이 많은 나무를 살리고 빠르게 산림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해 3월 강원 삼척시 도계읍 점리의 해발고도 800m 한 야산. 2017년 5월 발생한 산불로 큰 나무들이 모두 잘려나간 가운데 수백 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울창한 숲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내화수림으로 산불 확산 막아야  

이번 산불은 발생 8시간 만에 진화됐다. 다른 대형 산불보다 비교적 빠르게 진화됐지만, 송림 주변 주택과 펜션 피해가 컸다. 주택 68채와 펜션 26채 등 총 125채가 불에 타면서 내화수림대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화수림대는 도로ㆍ철도ㆍ임도ㆍ집단마을ㆍ농경지ㆍ능선 주위 숲이나 대형 산불 피해 복구 대상지 등에 띠 모양으로 숲을 조성하거나 기존 숲을 산불에 강한 숲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내화수림대 조성 사업 이미지.

내화수림대 조성 사업 이미지.

산불 대형화ㆍ연중화 피해지 복원 관심 커져 

대표적인 내화수목은 굴참나무·느티나무·은행나무·떡갈나무·물푸레나무 등이 꼽힌다. 동해안 지역은 산불 조심 기간에 바람이 강하게 불어 산불 비산 거리가 1.5㎞에 달한다. 이 때문에 곳곳에 활엽수를 심어 소나무보다 월등한 내화성을 갖추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측은 "산불 대형화ㆍ연중화로 피해지 복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2019년부터 산불 피해지에 내화수림을 조성하고 연구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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