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처럼 고문 받고 있어” 전직 관료의 안타까운 메모

  • 카드 발행 일시2023.04.14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잘 아는 한 전직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고위 관료 출신 K씨가 종합병원 특실에 입원해 있는데 긴급히 나를 찾는다는 것이다. K는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빠지고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입원 6개월이 지났는데도 병명이 밝혀지지 않았다. 전·현직 관료와 기업인이 참석하는 조찬회에서 웰다잉 강의를 할 때 그와 몇 차례 해후한 일이 있었다.

며칠 후 병실을 찾아갔다. 그는 휑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두 손을 저어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는 말을 잃었다. 베개 옆에 놓인 메모지를 집어 들고 이렇게 썼다. “박종철처럼 고문을 받고 있어. 온몸이 아파. 빨리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는데 좀 도와줘.” 삐뚤빼뚤 갈겨쓰는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뺨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메모지를 들여다보며 의아했다.

그가 왕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느닷없이 1987년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 사건을 왜 꺼냈는지 궁금했다. 고문을 받는 것처럼 심한 통증을 겪고 있다면 왜 의사나 가족에게 증상 설명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계속 검사가 진행 중이라 우선 응급조치만 하고 있다는 의료진의 대응이 못마땅한 데다 연명 의료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달해도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설명을 메모지에 지렁이 글씨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