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마약범죄 ②
“호기심에 마약을 했어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사는 A씨는 지난달 6일 중학생 딸 B양(14) 입에서 나온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물을 찾으며 혼란스러워하던 딸을 일단 재운 뒤 추궁하자 “어제 집에서 필로폰을 물에 타먹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고심 끝에 동대문경찰서에 “딸이 마약을 한 것 같다”고 신고했다. B양은 12일까지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치료를 병행하는 상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B양이 마약을 구한 방법은 간단했다. 구글에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를 검색하자 곧장 판매자의 텔레그램 아이디가 나왔다. 판매자가 시키는 대로 비트코인 40만원어치를 송금한 뒤 광진구의 약속한 장소로 가 필로폰 0.5g을 수령하기까지는 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청소년 마약 문제는 이미 ‘10대 마약상’이 등장할 만큼 고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7일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가 구속기소한 마약류 밀수·유통 조직원 등 29명의 주축에는 17~19세 청소년이 4명이나 껴있었다. 이들은 주로 마약 운반책을 뜻하는 ‘드로퍼’로 활동했다. 지난해 5~6월 인천경찰청은 고3 마약상 3명을 검거했다. 필로폰·케타민·LSD·엑스터시 등을 도매가로 사들여 10배씩 웃돈을 받고 팔아왔고 성인 6명이 그 밑에서 드로퍼로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들은 2021년 10월부터 8개월간 현금 4800만원과 비트코인 3300만원어치 등 8100만원을 벌어들였다. 압수한 마약도 7억원어치가 넘었다.
10대들 사이에 마약이 빠르게 침투한 배경으론 ‘원터치’ 유통구조의 정착이 꼽힌다. 텔레그램 터치 몇 번이면 판매자를 직접 만날 필요 없이 당일 픽업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조폭이나 마약상을 마주대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제거되면서 청소년들의 심리적 방화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지난 11일 10대 구매자를 가장해 텔레그램 마약 판매상에게 “처음인데 뭘 하면 좋겠냐”고 말을 걸어보니, 4분 만에 답장이 돌아왔다. 이 판매자는 “미성년자면 가격 부담되지 않냐”며 싼 제품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입금하면 10분 안에 좌표를 주겠다”며 “지금 강남 ◇◇동에 있으면 5분 안에 받는다”고 안내했다.
미디어가 청소년 마약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우 유아인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등 유명인이나 그 자제들의 마약 사건이 이어지는 상황에 넷플릭스 ‘더글로리’, ‘수리남’ 등 마약을 소재로 한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토종 콘텐트의 범람이 맞물리면서 10대들의 마약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이범진 마약퇴치연구소장(아주대 약학대 교수)은 “마약이 마치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의 쾌락 행위처럼 묘사되면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심각성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0대 마약사범은 2017년 119명에서 지난해 481명으로 5년 새 약 4배 늘었다. 특히 2021년까지 한 자릿 수에 불과했던 15세 이하 마약사범이 지난해 41명으로 크게 늘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2일 ‘마약류 범죄 척결을 위한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를 열고 “강남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은 미래 주역인 학생들을 노렸다는 점에서 테러와 같은 범죄”라며 “불퇴전(不退轉)의 각오로 마약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임상현 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 경기도다르크 센터장은 “2019년 개소 당시만 해도 40대가 막내일 정도로 연령대가 높았지만, 요즘은 10대 학부모 연락이 주 1회꼴로 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10대 마약사범의 예방·치료·처벌 전 과정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청소년 투약자를 위한 재활시설은 국내에 단 한 곳도 없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본부 중독재활센터 팀장은 “청소년 마약은 오랫동안 예방의 대상으로만 여겨져왔지 치료·재활의 대상이 아니었다”며 “그나마도 학교에 예방 교육을 하겠다고 공문을 보내면 학교와 학부모들이 난리가 나곤 했다”고 말했다. 학생·초범이란 이유로 교육이수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데 대해서도 “오랜 기간 관찰이 필요한데 법의 테두리를 너무 빨리 벗어난다. 28시간 교육만으론 사태가 해결되진 않을 것”(박진실 변호사)이란 진단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교육 현장이다. 교육부는 2019년 학교보건법 개정을 통해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을 예방 교육 대상에 포함했지만, 실효성 있는 교육은 전무한 상황이다. 1986년 ‘마약 없는 학교와 지역사회법(DFSCA)’을 제정해 약물 교육을 정식 교육과정에 포함시킨 미국에선 ‘DARE(Drug Abuse Resistance Education program)’ 등 상황극을 통한 교육이 이미 일반화돼있다. 영국은 2003년부터 프랭크(FRANK) 캠페인을 통해 학부모가 자녀와 마약 문제를 터놓고 논의할 수 있도록 자료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 자료가 미진하다는 지적을 알고 있고, 다급하게 대책을 세우는 중”이라며 “올해 5월 교사들에 대한 전체 연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혜정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단순히 겁을 주는 교육보다는 전문가들이 최신 사례와 실제 상황 등을 알려주는 실질적 교육이 필요하다”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국가 차원의 통합적 관리, 예방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 치료와 회복 중심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이범진 소장도 “마약 예방 교육과 치료·재활에 1달러를 쓰면 사회적 비용 20~100달러가 절감된다는 해외 연구도 있다”며 “성교육이 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주는 긍정적 효과가 크듯 마약 교육이 마약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