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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이력 조회도 사기꾼이 OK해야?…신산업 막는 황당 규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사기 방지 서비스 스타트업인 더치트는 지난 2015년 개인 간 거래를 할 때 사기 이력이 있는 계좌로 돈을 보낼 경우 송금 전 단계에서 ‘사기 의심 계좌’라고 알림을 띄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시중은행과 제휴해 서비스 출시를 코앞에 두고 난관에 봉착했다.

전화번호나 은행 계좌 등 가해자의 개인정보를 토대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동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소관 부처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용의자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다. 결국 서비스 출시는 무산됐다.

이후 경영난을 겪던 더치트는 2년 뒤 금융위원회가 선정한 ‘금융규제 테스트베드’ 1호 사례로 선정되면서 활로를 찾았다. 현재는 은행에 사기범의 계좌번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은행이 더치트가 수집한 사기꾼 계좌번호를 조회하는 식으로 ‘우회’해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도쿄 올림픽 참가를 앞둔 태국 선수들이 수완나품 공항에서 LG전자의 2세대 전자식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정작 비슷한 시기 출국한 '배구 여제' 김연경 선수 등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반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진 LG전자] [사진 LG전자]

도쿄 올림픽 참가를 앞둔 태국 선수들이 수완나품 공항에서 LG전자의 2세대 전자식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정작 비슷한 시기 출국한 '배구 여제' 김연경 선수 등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반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진 LG전자] [사진 LG전자]

김화랑 더치트 대표는 “범죄 예방 등 공익을 목적으로 개인정보 활용을 허용하면 민간참여를 통해 범죄 예방 분야의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금융위 등 관계 기관에 근거 조항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치트뿐만이 아니다. 1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년간 바이오‧드론‧핀테크‧인공지능(AI) 등 신사업 규제 개선을 요청한 86건에 대해 추적 조사를 했더니 개선된 사례는 8건(9.3%)에 그쳤다.

그나마 개선된 8건에서조차 현실과 동떨어져 활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핀테크 업계가 요구한 소액 단기보험업 자본금 요건이 완화(300억→20억원)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본(약 1억원)보다 20배 높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중소 제조업체인 일우P&S는 신개념 ‘2단 주차 장치’를 개발했지만 제품 출시를 못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주택가 주차공간이 대체로 빽빽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1층에 주차된 차량이 움직이지 않고도 2층 이상의 공간에 주차할 수 있는 기계식 주차장치를 개발했다.

하지만 ‘넓이 1.2 ㎡ 이상의 울타리를 설치해야 한다’는 안전 기준(국토교통부 고시)에 가로막혀 제품 출시가 불가능한 상태다. 이 회사 박수종 대표는 “입·출차 공간을 울타리로 가로막아 놓은 것”이라며 “이런 낡은 규정으로는 고정관념을 깬 신제품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LG전자의 ‘공기 청정기 달린 전자 마스크’도 규제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2021년 전 세계 23국에서 판매가 시작돼 역(逆)직구 바람까지 불 정도로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엔 전자식 마스크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인허가를 받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코로나19가 주춤해지고 나서야 출시됐으며, LG전자 온라인 브랜드숍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상헌 대한상의 규제혁신팀장은 “이제 규제는 불편함을 넘어 기업 생존의 문제”라며 “신산업 규제 개선에는 항상 ‘소관 부처가 여럿’이라는 등 꼬리표가 붙으면서 혁신 동력을 약화시킨다”고 꼬집었다. 김기현 국민의힘당대표도 이날 열린 상의 정책간담회에서 “외국 업체들과 글로벌 환경에서 동등히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세제 등 모든 제도에서 전방위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의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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