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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둔화·경기 하강 신호에...한은, 기준금리 또 동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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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회 연속 동결했다. 지난 2월에 이어 ‘일단 멈춤’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있는 데다, 그간의 금리 인상 여파 등으로 하반기 경기 회복이 더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은은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강조했지만, 시장은 연내 인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은은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하기로 했다. 금통위원 6명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다. 지난 2월 3.75%로 인상을 주장했던 ‘매파(통화 긴축 선호)’ 조윤제 위원마저 이번엔 동결로 돌아섰다.

금통위원 6명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3.5% 동결

2연속 금리 동결의 가장 큰 배경은 예상에 부합하는 물가 둔화 흐름이다. 지난해 7월 6.3%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후 완만하게 하락하다 지난 2월 4%대에 접어들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로 전월(4.8%)보다 0.6%포인트 떨어졌다. 한은은 이 흐름대로라면 하반기 들어 물가 상승률이 3%대로 낮아지고, 연간으론 2월 전망치인 3.5%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금융시장 불안이 심화한 것도 동결 결정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시장에서 연내 인하 가능성이 나오는 데 대해선 “과도하다”고 일축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라며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이어가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과 마찬가지로 향후 3개월 내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3.75%까지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가가 잡히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의 물가안정 목표(2%)와 거리가 있다. 또 최근의 물가 상승률 둔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격하게 치솟았던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기저효과’가 나타난 영향이 크다. 향후 국제 유가 변수, 공공요금 인상에 따라 물가가 또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특히 물가 변동의 장기적 추세를 나타내는 근원물가 상승률은 둔화가 더디다는 점이 부담이다. 근원물가는 일시적 변동성이 큰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 지수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실물 경제에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한은에 따르면 3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4%로 전월과 같은 수준이었고, 연간으론 2월 전망치(연중 3%)를 다소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전기ㆍ가스 요금의 인상 기조가 이어지는 점,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로 서비스 물가 상승 압박이 여전하다는 점 등도 한은이 눈여겨 보는 변수다.

한은 “올해 경제 성장률, 2월 전망치(1.6%) 소폭 하회할 것”

하지만 시장은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레이스가 사실상 끝났다고 보고 있다. 경기가 더 얼어붙을 수 있어서다.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은 수출 부진 등에 이미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 역성장 탈출 여부도 불투명하다. 1∼2월 경상수지는 11년 만에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통관기준 무역수지도 3월(-46억2000만 달러)까지 13개월째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2월이 금리를 올릴 마지막 기회였고,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 때문에 뒤늦게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가 더 안좋아진다거나 물가가 2%대로 내려앉는다면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도 이번 동결 배경으로 경기 둔화를 언급했다. 이번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는 “올해 경제 성장률이 지난 2월 한은 전망치(1.6%)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문구가 새로 추가됐다. 다만 이 총재는 “반도체 경기가 어렵지만 하반기에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 거라고 보기도 어렵고, 정보기술(IT) 분야를 제외하고 올해 성장률을 계산하면 1.9% 정도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말에도 IT 외 다른 분야의 성장률이 견고하다면,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나쁜 수치가 아니다”라며 “그럼 이를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할지 시장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ㆍ미 기준금리 역전폭 1.5%포인트, 역대 최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향후 기준금리에 영향을 미칠 가장 큰 변수는 환율이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1.5%포인트를 유지하게 됐다. 2000년 5~10월 이후 22년여 만에 최대 역전 폭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5월에 한 번 더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경우 한미 금리 격차는 1.75%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미국과 기준금리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기축통화(국제 결제ㆍ금융거래의 중심이 되는 화폐)인 달러 가치가 오르고, 국내 자금은 빠져나가 원화 가치는 떨어질(환율은 상승) 수 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입 가격을 비롯한 물가가 오를 수 있다.

이 총재는 ‘적정한 한미 금리 격차’는 없다고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서 한미 금리 차가 원화 절하 압박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가치 절하는 수출 부진 등 무역수지 악화의 영향도 큰데, 이로 인한 외환시장의 불안이 커진다면 한미 금리 격차를 좁히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특정 환율 수준에 관계없이 변동성이 클 경우엔 금리뿐 아니라 다른 여러 정책을 통해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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