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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중국, 반도체 수입국 전락’ 이게 미국의 진짜 목표다

중앙일보

입력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반도체 전쟁』 밀러 교수 인터뷰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이 한해 전 같은 기간보다 95% 넘게 줄었다. 반도체 판매가 가파르게 줄어서다. 수요 급증과 급감은 반도체 부문의 숙명이다. 힘겨운 고비만 넘으면 호황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미국-중국의 반도체 전쟁 탓이다. 두 나라 패권 경쟁 탓에 반도체 불황이 장기화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단기 데이터 분석을 뛰어넘는 궁금증이다. 좀 더 큰 틀에서 살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역사적인 시각에서 『반도체 전쟁(Chip War)』이란 책을 쓴 크리스 밀러(경제사) 터프츠대 교수를 서둘러 줌(Zoom)으로 인터뷰한 이유다.

미, 한국 반도체 죽이기 안 원해
한국 기술의 중국 유출 막아서
중 반도체 후진국 되게 하는 것
일 메모리 쇠락, 미국 탓 아니야

크리스 밀러

크리스 밀러

삼성전자 순이익이 급감한 바람에 한국 내에서는 음모론마저 퍼지고 있다. 미국이 1980년대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망가뜨렸는데, 이번에는 중국을 압박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시각이다.
“과거 일본 반도체 업계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오해가 좀 있는 듯하다.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은 세계 D램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기는 했다. 순이익보다 시장 점유율에 집중한 결과였다. 그러나 일본 회사는 (돈을 벌지 못해) 메모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비메모리)로 전환하지 못했다. 그 시절 미국이 대(對)일본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자발적인 수출 제한 등을 압박했지만, 일본 반도체 산업이 쇠락하는 데 미국이 한 역할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80년대 일본 기업이 겪은 일은 앞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가늠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80년대 일본이 중국의 미래라는 말인가.
“최근까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정부의 보조금 등을 받아 생산 능력을 마구 키웠다. 일본 NEC 등이 80년대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생산 능력을 키워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 했듯이 말이다. 중국이 생산 능력을 키울 뿐 수익성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얘기다.”

미국이 원하는 두 가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 반도체 전략에 그런 한계가 있다면 왜 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 연합까지 만들며 전쟁을 벌일까. 워싱턴의 파워 엘리트들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미국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중국과 서방의 반도체 생산 능력의 차이(갭)를 유지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벌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정학적 문제다. 요즘 우리(미국)가 좀 더 걱정하는 일이 하나 있다.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공격이나 봉쇄가 실제로 일어나면 이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재앙이다. 미국 등이 대만산 반도체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어서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 능력을 대만 밖에서도 갖추려고 하는 이유다.”
대중 봉쇄가 반도체 수입마저도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도체 장비가 아니라 반도체 수입까지 막는 것은 미국의 전략이 아니다. 중국이 반도체 완제품을 해외에서 사들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게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뒤처져 있기를 내심 바란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반도체를 해외에서 계속 사들여 갈 수밖에 없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이 구축한 반중(反中) 반도체 연합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미국뿐 아니라 한국 삼성과 SK하이닉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인 ASML 등이 언제까지 거대한 중국 시장을 외면할 수 있을까.
“동맹이 지속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동맹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동맹이 오래갈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있다. 중국은 B급 반도체를 많이 생산하기는 하지만, 매출 규모 등에 비춰 여전히 작은 플레이어다. 반면에 중국의 반도체 수요는 크다. 시장이 거대하다는 얘기다. 필요한 반도체를 스스로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수입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대만에서 반도체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 “반도체 수출하되 기술은 막아라”

2023년 10월이면 미국의 봉쇄 때문에 반도체 장비 등이 중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삼성 등의 중국 현지 공장이 시설 낙후 등으로 쓸모없어진다. 삼성 등이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중국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갖고 있다. 내가 알기론 대부분의 회사가 10월 이전에 중국에서 철수하는 등의 계획을 갖고 있다. 일부 기업은 중국 공장을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지만 확장은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 10월 이후엔 중국에 반도체 장비가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타격받을 기업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밀러 교수가 보수진영의 싱크탱크인 미기업연구소(AEI)의 주요 연구자여서 워싱턴 분위기를 잘 알 듯하다. 한국은 미·중 반도체 전쟁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이 미·중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하는 게 미국의 정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깨닫는 게 아주 중요하다. 미국이 한국에 원하는 것은 중국에 반도체를 계속 수출하는 것이다. 다만, 한국이 보유한 기술 등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봉쇄 때문에 한국 반도체 회사가 중국 내에서 덜 생산하고, 대신 중국 밖에서는 더 생산하는 상황을 미국은 원한다.”
『반도체 전쟁』에서 한국을 다룬 장의 제목이 ‘적의 적: 한국 (Enemy’s enemy: South Korea)’인데, 이 제목이 요즘 워싱턴 파워 엘리트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웃으며) 그 표현이 관계를 묘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모든 나라가 경쟁자다. 그런 경쟁 지형에서 중국을 겨냥한 동맹에서 한국의 의미 또는 위상이 그렇다는 얘기다.”

◆크리스 밀러=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프로그램 국장. 러시아와 튀르키예, 중국의 국제 정치와 경제의 주요 변화, 미국과 중국, 동아시아의 반도체를 둘러싼 정치·외교를 연구한다. 하버드대에서 역사학 학사, 예일대에서 석·박사를 했다. 저서로는 『푸틴의 경제학(Putinomic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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