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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25) 조조 독살에 실패한 길태, 의대조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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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서주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 하자 공융은 시기가 겨울임을 들어 옳지 않다며 먼저 장수와 유표를 귀순시킨 후, 서주를 도모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습니다. 조조는 그의 말에 따라 유엽을 장수에게 보냈습니다. 이때 원소도 장수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장수의 참모인 가후는 원소의 사신을 만난 자리에서 편지를 찢고 그를 꾸짖어 물리쳤습니다. 장수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지금 강한 쪽은 원소고 약한 쪽은 조조인데, 편지를 찢고 사자를 꾸짖었으니 원소가 쳐들어온다면 이제 어쩌시겠소?

조조를 따르는 것이 낫습니다.

나는 그와 원수진 일이 있는데 어찌 용납하겠소?

조조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천하를 정벌하고 있고, 원소는 강성해서 우리를 중히 여기지 않지만 조조는 약하기 때문에 우리를 얻으면 기뻐할 것이며, 조조는 오패(五覇)의 뜻이 있어 반드시 사사로운 원한을 접고 덕을 천하에 펴고자 할 터이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장수는 가후의 말이 틀린 적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대로 조조에게 투항했습니다. 조조는 장수를 양무장군(揚武將軍)에 임명했습니다. 조조는 유표도 귀순시키길 원했습니다. 가후는 유표가 명사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니 반드시 문명(文名)있는 사람을 보내야만 투항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순유가 공융을 추천했습니다. 그러자 공융은 자신의 친구인 예형이 훨씬 적임자라고 헌제에게 표를 올려 천거했습니다.

조조는 예형을 불러 대면하고는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형이 천지에 사람이 없음을 한탄했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수하의 참모들을 거론하며 모두가 영웅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예형은 웃으면서 모두가 하찮은 일이나 할 인물들이라고 비꼬았습니다. 그리고 본인이야말로 유불도(儒佛道)는 물론 제자백가(諸子百家)까지 능통하여 요순(堯舜)을 만들 수도 있고 성인(聖人)이 될 수도 있다면서 조조를 훈계했습니다. 조조가 예형에게 조만간 벌어질 연회에서 고수(鼓手)나 하라고 하자 예형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조조의 참모들을 풍자와 조소로 비꼬는 예형.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의 참모들을 풍자와 조소로 비꼬는 예형. [출처=예슝(葉雄) 화백]

장료가 불손하기 짝이 없는 예형을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조조는 실속 없는 명성이 꽤 알려진 그를 지금 죽이면 천하는 자신에게 손가락질할 터이니 북이나 치게 해 그를 욕보이려고 했습니다.

드디어 연회의 날이 됐습니다. 예형은 새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들어가 북을 쳤습니다. 담당 관리가 꾸짖자 입고 있던 헌 옷을 모두 벗어던졌습니다. 모두가 사색이 되자 예형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바지를 입었습니다. 조조가 그의 무례함을 꾸짖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황제를 기만하는 것이 무례한 짓입니다. 나는 부모가 주신 그대로의 깨끗한 몸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네가 깨끗하면 누가 더럽다는 것이냐?

그대는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도 분간하지 못하니 눈이 더럽고, 시서(詩書)를 읽지 않으니 입이 더럽고, 충직한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귀가 더럽고, 고금을 통달하지 못하니 몸이 더럽고, 제후들을 용납하지 못하니 뱃속이 더럽고, 언제나 역적질할 생각만 하니 마음도 더럽소이다.

공융이 사태가 위급함을 느끼고 친구인 예형을 구하려고 나서자, 조조는 예형을 사자로 삼아 유표에게 보내서 그의 항복을 받아오도록 했습니다. 예형이 형주에 도착해 유표를 만났습니다. 유표의 덕을 칭송했지만 실은 비꼬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상한 유표는 예형을 강하태수(江夏太守) 황조에게 보냈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예형을 죽이지 않은 것을 궁금해했습니다. 유표가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예형이 여러 번 조조를 모욕했지만 조조가 죽이지 않은 것은 인망(人望)을 잃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사신으로 보낸 것이다. 내 손을 빌려 죽이고 현자(賢者)를 죽였다는 오명을 내게 씌우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황조를 찾아가 보라고 한 것은 조조에게 나도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모두가 유표의 훌륭함을 칭찬했습니다. 황조는 예형을 만나 술을 한 잔 마시며 인물평을 하던 중 자신을 비꼬자 크게 노해 즉시 예형을 죽였습니다. 조조가 그 소식을 듣고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썩어빠진 선비가 세 치 혀로 도리어 자신을 죽였구나!

여기서 잠시 모종강의 평을 살펴볼까요.

예형, 공융, 양수 세 사람은 재주는 같았으나 인품은 달랐다. 양수는 조조를 섬긴 사람이고, 공융은 조조를 섬기지 않았으나 조조를 대접한 사람이고, 예형은 조조를 섬기지도 않고 대접하기도 싫어한 사람이다. 세 사람은 모두 조조에게 피살됐지만 세 사람 가운데 예형이 가장 굳세었기 때문에 유독 일찍 요절한 것이다. 조조는 간웅임을 자부했듯이 그의 재주와 역량은 한 시대를 굴복시키기에 충분했지만 예형은 그런 조조를 꼴같잖게 흘겨보며 철저히 무시해버렸다. 보통의 담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동승은 유비와 마등이 없는 허도에서 왕자복 등과 밤낮으로 조조 암살을 의논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고민은 결국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헌제가 이 소식을 듣고 태의(太醫) 길태를 보냈습니다. 동승은 비몽사몽 간에 꿈을 꿨습니다. 바로 조조를 속 시원히 처단하는 꿈이었습니다. 길태가 동승의 계획을 알아채고는 자신이 간단하게 조조를 없앨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조조가 두통이 심할 때마다 태의를 부르는데, 그때 길태가 약에 독을 타서 먹이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의(太醫) 길태. [출처=예슝(葉雄) 화백]

태의(太醫) 길태.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승이 꿈속에서 조조를 처단한 부분에 이르러 모종강이 아쉬워하며 평을 내렸습니다.

동승이 대보름날 밤에 정말 그런 꿈을 꾸었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꿈처럼 되지 않았는지 애석하다. 그러나 천지(天地)는 몽수(夢藪)고 고금(古今)은 몽연(夢緣)이며 인생은 몽혼(夢魂)이라고 했다. 한나라가 변해 삼국이 되고 삼국이 변해 진나라가 된 것을 보면 모두가 초록몽(蕉鹿夢)이고 호접몽(胡蝶夢)이고 한단지몽(邯鄲之夢)과 남가일몽(南柯一夢)일 뿐이다. 사실이라 하여 어찌 꿈이라 아니할 수 있고, 꿈이라 하여 어찌 사실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동승은 기쁜 마음에 병이 다 나은 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안채를 돌며 대사(大事)의 성공을 예감했습니다. 일이 안 되려면 사소한 곳에서 어그러지게 마련이지요. 동승은 안채 어두운 곳에서 시첩(侍妾) 운영이 종놈인 진경동과 속삭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승은 크게 노해 두 사람을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부인의 만류로 각각 40대씩을 때리고 종놈은 냉방에 가뒀습니다. 원한을 품은 진경동은 쇠사슬을 끊고 담을 넘어 조조에게로 달려가 그간의 모의를 낱낱이 고해바쳤습니다. 조조는 진경동을 숨겨두었고, 동승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멀리 도망간 것으로 알았습니다.

조조는 두통이 도진 것처럼 행세하며 길태를 불렀습니다. 길태는 준비한 약에 독을 타서 조조에게 바쳤습니다.

조조가 길태에게 먼저 마셔보라고 하자 일이 누설되었음을 알고 조조에게 달려들었지만 실패하고 사로잡혔습니다.

길태가 가져온 독약을 밀치는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길태가 가져온 독약을 밀치는 조조. [출처=예슝(葉雄) 화백]

조조는 사주한 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고문했습니다. 길태는 혼자 한 것이라며 조조를 꾸짖었습니다. 조조는 길태를 옮기고 다음 날 연회를 열었습니다. 동승은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즈음, 조조는 길태를 끌어내 고문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길태는 끝까지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조조는 왕자복 등 공모자들을 잡아두고 동승에게 갔습니다. 길태와 종놈을 대질시켰습니다. 동승이 부인하자 조조는 그의 침실에서 의대조(衣帶詔)와 의장(義狀)을 찾아냈습니다. 조조는 동승의 전 가족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곧 피바람이 몰아치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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