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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판 ‘미나리’…‘쌀소년’ 놀림받으면 “두 유 노 태권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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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제영화제 27관왕을 달성한 화제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한 모자의 이야기다. [사진 판씨네마]

국제영화제 27관왕을 달성한 화제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한 모자의 이야기다. [사진 판씨네마]

“우리 이제 집에 가자.” 지극히 단순명료한 문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집’을 물리적인 주거 공간이 아닌 ‘내가 진짜 나답게 편히 쉴 수 있는 곳’ ‘내 정체성이 비롯된 곳’ 등으로 의미를 넓히는 순간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 된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는 바로 이런 진정한 집을 찾아 헤매는 이민자 모자의 여정을 그린다.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주해 자란 한국계 이민 2세 앤소니 심(사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의 플랫폼심사위원상 등 세계적으로 27관왕을 달성한 화제작이다. 미국에 정착하려는 한국인 가족의 삶을 다룬 영화 ‘미나리’(2021)를 잇는 또 하나의 한인 이민자 서사라는 점에서 ‘제2의 미나리’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국제영화제 27관왕을 달성한 화제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한 모자의 이야기다. [사진 판씨네마]

국제영화제 27관왕을 달성한 화제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한 모자의 이야기다. [사진 판씨네마]

영화는 1990년 남편과 사별한 뒤 어린 아들과 둘만 남은 소영(최승윤)의 사정을 압축해 들려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새 출발을 위해 한국을 떠난 소영과 아들 동현(황도현)에게 캐나다 생활은 대다수 이주민이 겪는 인종차별과 무시·배제의 연속이다. 동현은 등교 첫날 점심으로 싸간 김밥 때문에 ‘라이스보이’, 즉 ‘쌀소년’이란 별명을 얻으며 친구들의 따돌림에 시달린다.

국제영화제 27관왕을 달성한 화제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한 모자의 이야기다. [사진 판씨네마]

국제영화제 27관왕을 달성한 화제작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새로운 삶을 찾아 캐나다로 이주한 모자의 이야기다. [사진 판씨네마]

어느덧 9년 뒤 10대 청소년이 된 동현(이든 황)은 컬러 렌즈를 끼고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모습이다. 엄마와는 멀어지고 또래 백인 친구들과 외모로나 내면으로나 더 가까워진 듯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엔 기억나지 않는 한국과 아빠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하다. 두고 온 것들에 대해 얘기하길 한사코 꺼리던 소영은 자신이 곧 동현을 홀로 두게 될 처지임을 깨닫고, 비로소 아들과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한국행 여행에 나선다.

앤소니 심

앤소니 심

이민 2세들이 이주 초반에 겪는 고난을 나열한 듯한 영화 초반은 다소 기시감이 들지만, 대부분 실제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디테일이 남다르다. 여덟 살 무렵이던 1994년 가족들과 캐나다로 건너가 성장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늘 너무 그리웠다”는 앤소니 심 감독은 이번 영화의 연출은 물론 각본·제작·편집에 배우로까지 참여하며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녹여냈다. 친구들이 괴롭히면 “두 유 노 태권도?”라고 반격하고 한 대 세게 때리라고 일러주는 엄마의 모습 등 영화 속 크고 작은 사건들 모두 그의 실제 경험에서 나왔다.

16㎜ 필름, 1.33:1 비율 화면에 1990년대를 담아낸 영상미는 마치 빛바랜 부모님의 사진첩을 넘겨보는 듯 아득하고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배경이 바뀌는 지점에서 화면이 가로로 넓어지면서 자연 다큐의 한 장면처럼 한국 시골의 경관이 펼쳐지는데, 이제야 진정한 집에 당도한 듯 편안하고 후련한 소영과 동현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엄마 소영을 연기한 배우 최승윤은 처음 주연을 맡은 이 영화로 제19회 마라케시국제영화제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만난 그는 영화가 해외에서 이토록 큰 인정을 받은 데 대해 “이민 얘기이기에 앞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다. 엄마 없는 사람은 없으니 그런 점에 많이 공감해주신 것 같다”며 “누구에게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중요하지 않나. 동현뿐 아니라 소영에게도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버리고 떠나왔던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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