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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선투자→시장 선점→이익 창출’ 선순환 고리 끊어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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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호 03면

삼성 반도체 어닝쇼크 진단

반도체 업계가 재고 증가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1분기 잠정실적으로 매출액 63조원, 영업이익 6000억원을 발표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전경. [연합뉴스]

반도체 업계가 재고 증가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1분기 잠정실적으로 매출액 63조원, 영업이익 6000억원을 발표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전경. [연합뉴스]

69.4%. 지난해 연간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플래시 등)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매년 수십 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던 반도체(DS) 부문에서도 메모리 반도체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반대로 메모리 반도체 부진이 깊어지자 삼성전자 영업이익도 14년 만에 1조원 밑으로 내려앉았다. 반도체 부문의 실적은 올해 1분기 영업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더구나 ‘무(無)감산’ 전략으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한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인위적 감산’에 들어간다고 밝히면서 삼성전자 기술 ‘초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 시장 부진 속에 어려움에 빠진 한국 반도체 산업을 진단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올해도 속절없이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DDR4 8G 2666 기준)의 평균가격은 17% 하락했다. 반도체 수요가 살아나지 못하자 반도체 재고 역시 빠르게 쌓이는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재고량은 지난 1월에만 28% 늘었다. 업계에서는 20주 생산량이 재고로 쌓여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까지 쌓인 과잉 재고만 하더라도 정상 수준으로 내려오려면 절반가량은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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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재고가 쌓이다 보니 그동안 ‘인위적 감산’을 외면하던 삼성전자도 이번 잠정 실적 발표와 함께 인위적 감산을 공식화했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반등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을 공식화한 것은 그만큼 시장 회복이 멀었다는 해석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재고는 오는 7~8월 정도가 되면 나아질 것으로 전망하지만, 업체들의 감산 때문이고 4분기는 돼야 수요 회복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라며 “삼성전자 역시 감산 결정에 앞서 연내 반도체 업황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결국 감산을 공식 인정한 이유로는 기술격차 축소가 꼽힌다.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력이 앞서면 제조원가가 급격히 낮아진다. 수천억원의 선행 투자로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먼저 만들어 시장을 선점한다. 여기서 나오는 이익으로 대규모 추가 투자를 집행하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삼성전자의 성공 방정식이다. 경쟁업체가 적자에 시달리는 반도체 불황기에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다음 호황기에 더 큰 이익을 올리곤 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한 이래 개발과 제조 과정에서 경쟁업체와 1~2년 정도의 초격차를 유지했다. 지난해 4분기에도 감산을 선택하지 않은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4.4%포인트(40.7%→45.1%) 상승했다. 지금까진 무(無)감산이 삼성전자 입장에선 이득이었던 셈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문제는 최근 들어 삼성전자가 자랑하던 기술 초격차가 과거 어느 때보다 좁혀졌다는 점이다. 예컨대 선폭이 12나노미터(㎚) 수준으로 추정되는 10㎚급 5세대 D램은 미세화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대당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극자외선노광장비(EUV) 사용의 필요성이 커진다. 라인 하나를 신설하는데 4조~5조원이 들어가는데 경쟁업체와 충분히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시장을 지키기 위한 출혈 경쟁으로 입을 손실을 반도체 가격 상승기에 벌충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여전히 기술 수준에서 앞서고, 제조원가도 경쟁사 대비 가장 낮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격차가 줄어든 만큼 예전처럼 적자를 감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EUV 장비 확보가 곧 기술 격차가 된 상황이라 삼성전자 내부에선 무감산을 고집하기보단, 손실을 최소화해 설비 투자에 나서자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저장장치인 낸드플래시는 통상 동일 면적에 더 높이 쌓을수록 성능이 향상되는 특성이 있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적층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200단 이상의 적층 공정을 넘어서면 투자 대비 효과를 보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셀 하나에 3비트의 정보를 저장하는 기존 TLC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QLC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데이터 처리 속도와 내구성 등에서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문제다. 메모리 반도체의 상당부분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한국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엔 올해 10월까지 유예 조치를 적용했으나 추가 유예는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중 40%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중국 우시와 다롄에서 전체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생산하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앞으로 중국 공장의 기술적 경쟁력 유지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말에도 미국의 반도체 투자 보조금을 받을 경우 앞으로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발표한 바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주요국 정부의 결정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닌 탓에 지금으로선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당장 생산을 금지하진 않은 덕분에 그나마 다행이란 평가도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이 언제쯤 회복할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지나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가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본격적인 반등으로 이어지려면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승우 센터장은 “챗GPT 효과로 서버와 그래픽용 메모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면서 최근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가 꿈틀거리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는 본격적인 수요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근창 센터장도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흑자를 보려면 빨라야 올해 4분기,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 정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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