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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인십색’ 선거구제…기득권 내려놓고 최적 공약수 찾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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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4호 05면

[여의도 톺아보기] 선거제도 개편의 정치학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원위원회에 회부될 선거제도 개편안이 보고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원위원회에 회부될 선거제도 개편안이 보고되고 있다. [뉴시스]

국회는 지난달 30일 내년 4·10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도 개편을 놓고 전체 의원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전원위원회에 돌입했다. 전원위는 오는 10~13일 회의를 열고 집중 토론을 벌일 계획이다. 우여곡절 끝에 닻은 올렸지만 난상토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야는 물론 도시·농촌, 수도권·지방, 중진·초선 등 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십인십색’의 현안이다 보니 합의점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다수다.

현재 전원위에 상정된 선거제도 개편안은 (1)중대선거구제(도농복합형)+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2)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3)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다. 그중 ▶의원 정수 및 비례 의석 확대 여부 ▶소선거구제 vs 중대선거구제 ▶병립형·준연동형, 전국·권역별 비례 의석 배분 방식 등이 핵심 쟁점으로 꼽히고 있다. 하나하나가 그동안 끊임없는 논란 속에 미제로 남겨져 있던 고차방정식들이다.

첫 번째 안은 대도시 선거구는 3~5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어촌 지역은 선거구당 1명을 선출하는 현행 소선구제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국민의힘이 선호하는 방안이다. 무엇보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의석이 크게 늘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2020년 총선 때 서울에서 더불어민주당은 53.5%,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41.9%를 얻었다. 하지만 의석수는 41대 8로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소선거구제 특성상 접전 지역구의 2등 표는 모두 사표가 되면서다.

이 방식의 한계는 민주당이 시큰둥한 것은 물론 국민 호감도 또한 높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달 21~23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현행 소선거구제 지지는 52%, 중대선거구제 지지는 32%였다. 민주당도 기존의 수도권 의석 중 상당수는 내줄 수밖에 없는 반면 농어촌 지역에선 추가 의석 확보가 어렵다는 점에서 “절대 받을 수 없는 안”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두 번째 안은 민주당이 선호하는 방안으로, 비례대표를 전국 단위 대신 권역별로 뽑는 것 외에는 지난 총선 때 방식과 흡사하다. 이 방식은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의 간극이 줄고 군소 정당의 원내 진출이 수월해진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비례 의석을 대폭 늘려야 하지만 이에 대한 여론이 매우 부정적이란 점이다. 지난 총선 때 이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양대 정당이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꼼수’ 논란을 빚은 것도 부담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의원 정수는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다.

세 번째 안은 선거구당 4~7명을 뽑는 대선거구제가 핵심으로 제3당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당과 후보에게 각각 투표하는 개방명부식을 도입해 유권자의 다양한 선호도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면 정당의 기능이 약화되고 결정 방식이 복잡해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처럼 어느 선거제도든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론적으로 최상의 선거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 나라의 정치 현실과 유권자들의 요구에 얼마나 부합하느냐가 제1의 판단 기준일 따름이다. 그런 만큼 여의도 정치권도 지금이야말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여론이 가장 호응할 수 있는 최적의 공약수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통해 지역주의 타파와 정책 중심의 정당정치 제도화라는 국민적 요구에 적극 호응하라는 주문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은 몇 가지 사항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선거제도 개혁 못지않게 그에 따른 정치적 파생 효과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선거구제를 바꿨을 때 정당 체제는 어떻게 변하게 될지, 정국 안정엔 도움이 될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지, 현 정치 체제나 권력 구조와의 제도적 조응성은 어느 정도일지, 즉 잘 맞는 제도일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동반돼야 한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 의원들 다수가 선택한 안이 그대로 채택될 경우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를 전원위 3개 안에 대입해볼 경우 모두 나름의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표 참조〉

선거구제와 선거제도의 차이점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거구제는 좁은 의미의 선거제도다. 즉 투표 후 각 정당이나 후보가 얻은 득표를 의석으로 전환시키는 장치다. 반면 선거제도는 선거 과정 전반을 규정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으로 공천 제도와 선거운동 방식 등을 모두 포괄한다. 현재 한국 정치의 산적한 문제들은 선거구제만 바꾼다고 해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오히려 이념과 진영 갈등으로 고착화된 정치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선거구제보다 공천 개혁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발상의 전환 또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4월 안에 결론을 내자”고 독려하고 있지만 전원위 소집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게 현실이다. 현역 의원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어렵사리 성사된 토론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제4의 수정안 등 플랜B를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학계는 물론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개혁의 주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당락을 좌우할 선거제도를 자신들 손으로 바꾸는 데 대한 거부감이 팽배한 만큼 의원들은 손을 떼라는 주장이다. 대신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중립적인 외부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꾸린 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편안을 마련하고 정치인들은 그 방안을 그대로 따르도록 하는 게 더 합리적일 수 있다.

4년마다 선거제도를 바꾸는 후진적 정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면 시간에 쫓겨, 물밑 주고받기를 통해 졸속으로 합의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투명한 과정과 합리적 절차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야 할 때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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