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조선 제1혀’ 한동훈과 정치인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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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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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표현이 화제다. “정말 말싸움 하나는 잘한다. 그런 능력이 저도 부럽다. 일부 언론이 ‘조선 제1검’이라고 평가하는데, 편파 수사를 해 그런 별칭은 붙일 수 없고 대신 오늘 말하는 걸 보면 ‘조선 제1혀’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한 장관의 대정부질문 답변 태도 등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그러자 한 장관은 취재진과 만나 자신을 ‘조선 제1검’이라고 부른 건 민주당이라고 반박했다. 김 의원을 향해선 “덕담하셨으니 저도 덕담을 해드리자면, 거짓말이 끊기 어려우시면 좀 줄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응수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초등학생 논법’이란 표현을 썼다. “논리적으로 되든 안 되든, 초등학생들 말싸움하듯 유치한 논법을 계속 쓴다”고 공격했다. 한 장관은 이에 대해서도 “국회에선 잘못을 지적받으면 호통치고 고압적으로 말을 끊고선 끝나면 라디오로 달려가 욕하고 뒤풀이하는 게 민주당 의원들 유행인가 보다”고 맞받았다.

 최근 국회 상임위나 대정부질문에선 야당 의원들과 한 장관의 언쟁이 단연 이목을 끈다. 이런 모습은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 장관의 인사청문회 때부터 시작됐다. 한 장관에게 화력을 집중하다 민주당 측이 '이모씨'를 이모로, 한국3M을 한 장관 딸로 오인하는 웃지 못할 장면까지 등장했다. 여권을 통틀어 '대야 화력' 면에서 한 장관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한 장관에 대한 지지가 뜨겁다.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의 텃밭인 대구 민심을 취재하면서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를 물은 적이 있다. 희한하게 “윤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 여기 관심은 온통 한동훈”이라는 반응이 꽤 많았다. 이들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한 장관이 야당 의원을 상대하는 태도에 박수를 보냈다.

야당 의원과 맞짱, 지지층 환호
원조 이낙연, 차분한 언변 주목
서민의 고단한 현실과 만나야

 정부를 공격하는 야당 의원을 무력화하는 모습으로 지지층의 인기를 끌어낸 원조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다. 이 전 총리는 2018년 대정부질문 등에서 야당 의원의 말문을 닫게 해 ‘사이다 총리’로 불렸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와 여당에도 쓴소리하고 야당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경륜을 보여달라”고 하자 이 전 총리는 “쓴소리는 비공개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거라 생각하느냐”는 야당 의원의 물음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믿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북 때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벤츠 차량을 타고 카퍼레이드한 것이 대북제재 위반이란 지적에는 “거기 가서 그 차를 타지 않고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당시 이 전 총리에게 “정부가 잘못한 게 맞다”는 답변을 받아내는 야당 의원은 주인공이 될 것이란 얘기까지 나왔었다.

 하지만 이 전 총리와 한 장관의 야당 의원에 대한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이 전 총리는 20년 넘게 기자를 하고 5선 의원과 전남지사까지 지낸 베테랑 정치인이다. 검사만 하다 장관을 처음 하는 한 장관에게 그런 연륜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럼에도 이 전 총리는 공방 도중 화를 내지 않고 시종일관 저음을 유지했다. 국정 현황을 꿰고 있어 짧으면서도 핵심적인 답변을 내놓곤 했다.

 반면 한 장관은 국회의원들의 질의 도중 의자 등받이에 털썩 기대거나 표정 등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잦다. 덩달아 언성이 높아지거나 “호통치지 마시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정무직 공무원인 한 장관은 이미 정치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등판설이 끊이지 않는 한 장관은 최근 서울 송파병 이사설이 나오자 부인했다. 하지만 한 장관 스스로 총선 출마 의지를 보이고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가봤으면 좋겠다. 장관 역할도 중요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핵심 인사로서 정치의 본령을 경험했으면 한다. 그가 국회에서 접하는 의원들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거쳤다. 치열한 여야 경쟁 속에 민심을 마주하며 유권자가 국가의 주인임을 체득한 이들이다.

 정치를 하겠다면 좋은 학벌과 권력이 큰 직업을 가졌던 이들일수록 서둘러 서민과 약자의 아픔이 깃든 현실 무대로 나가야 한다. 한 장관의 언어를 비꼬는 ‘편의점에 간 한동훈’ 만화가 회자하고 있다. 만화를 보며 상대방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점에 눈길이 갔다. 실제 다음 손님 응대가 급하고 야간에도 근무해야 하는 MZ세대가 많다.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다양한 삶과 부대끼는 발걸음이어야 의미 있는 정치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