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만원. 경기 하남에 사는 민모(31)씨가 지난달 가족(아내‧2살 딸)과 1박2일 강원 삼척으로 가족여행을 가서 쓴 돈이다. 민씨는 강원 동해의 A레스토랑에서 7만4000원, 강원 경포아쿠아리움에서 4만원을 썼다. B횟집에서 배달시킨 생선회와 편의점에서 산 맥주 4캔에 6만4000원이 들었다. 다음날 조식 뷔페에서 성인 2명 7만원을 냈고, 근처 카페에서 음료 2잔에 스콘까지 먹으니 3만2000원이 나왔다. 숙박비 28만원, 왕복 500㎞ 운전에 들어간 기름값과 통행료를 합치면 약 10만원이다.
민씨는 “아기가 어려 지난해엔 거의 여행을 못 간 만큼 올해 봄이 온 김에 1박2일로 놀다 왔다”며 “제주도나 해외를 나간 것도 아닌데도 신혼 초 놀러 가던 때와 비교하면 여행 경비 부담이 늘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민씨가 다녀온 여행 루트를 확인해보니 A레스토랑은 지난해 대비 메뉴 가격을 1000~2000원씩, B횟집은 1만원을, 조식 뷔페는 1인당 3000원을 인상했다. 아쿠아리움도 성인 1인 기준 입장료가 2000원 올랐다. 숙박비는 예약 방법과 시점에 따라 변동성이 크긴 하지만 지난해보다 6만~7만원이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물가상승 꺾였다? 관광 물가는 예외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 올라 1년 만에 가장 낮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그러나 봄나들이와 관련한 이른바 ‘관광 물가’의 가파른 오름세는 꺾이지 않았다. 석유류 가격이 내려가면서 전체 소비자물가 지수는 둔화했다지만, 봄철 여행을 다녀오거나 준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의미다.
품목별로 보면 지난달 외식 물가가 1년 전보다 7.4%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4.2%)보다 높았다. 피자(12%), 돈가스(10%), 삼겹살(8.6%) 등 주요 외식 품목 가격 고공 행진이 이어졌다. 특히 자장면은 같은 기간 9%가 올랐는데, 가격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전국 평균 자장면 가격은 6361원이다. 1970년 자장면 가격을 처음 집계할 당시 평균 가격은 100원이었다. 50여년 사이 63배 이상 가격이 오른 것이다. 특히 최근 5년 사이 자장면 가격 상승률이 가팔랐다. 5년 전인 2018년(5011원)과 비교해 26.9%가 오르면서다.
외식 프랜차이즈의 가격 인상은 줄 잇고 있다. 맥도날드‧롯데리아‧버거킹이 올해 들어 일제히 제품 평균 가격을 올렸고, 교촌 F&B는 지난 3일 교촌치킨 주요 메뉴 가격을 3000원씩 인상했다. 봄나들이 대표 간식 중 하나인 빵 가격도 오른다. 뚜레쥬르는 8일부터 50개 품목 가격을 평균 7.3% 올린다. 파리바게뜨는 지난 2월 95개 제품 가격을 평균 6.6% 올렸다.
4인가족 놀이공원 입장권만 27만원
먹거리 가격만 부담이 아니다. 에버랜드는 지난달 연간이용권과 일일이용권 가격을 최대 15.4% 인상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지난해 3월 연간이용권 가격을 1만~4만원 인상한 데 이어 1년 만에 또다시 가격을 크게 올렸다. 변동 가격제인 일일이용권의 경우 극성수기를 기준으로 6만4000원에서 6만8000원으로 올랐다. 이를 이용해 4인 가족이 놀이공원에 한 번 가면 입장권을 사는 데만 27만원가량을 써야 한다. 밥값이나 추로스와 같은 간식비는 별도다.
관광·레저 분야 물가상승률에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됐다. 지난달 통계청이 집계한 놀이시설 이용료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3% 올랐다. 같은 기간 호텔 숙박료는 상승 폭이 13.7%에 달했고, 운동경기관람료(9.1%), 영화관람료(7.4%), 콘도이용료(6.4%) 등 가족·연인·친구끼리의 나들이 때 소비하는 서비스 가격이 모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 늘어난 탓…정부, 할인쿠폰 지원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전면 해제되는 등 방역으로 인한 제한이 풀린 데다 3월부터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관광‧레저 수요가 폭증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 전국 평균기온은 9.4℃로, 평년(6.1℃±0.5℃)보다 3.3℃ 높은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부산 등 일부 지역을 기준으론 벚꽃이 가장 빨리 핀 게 올해다. 수요가 늘어난 만큼 관광‧레저 공급자 입장에서 가격을 올릴 유인이 생긴 셈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물가가 비싸지다 보니 과거 일본처럼 점차 해외로 나가는 걸 더 선호하게 된다는 게 문제"라며 "물가 상승으로 인한 해외 이탈, 이로 인한 내수 위축이 나타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29일 내수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이달부터 대대적 할인행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국내 소비는 늘리면서도 물가 부담은 낮추겠다는 취지다. 3만원 할인 숙박 쿠폰을 100만명에게 지원하고, 에버랜드‧롯데월드 등 유원시설 1만원 할인쿠폰을 18만명에 제공한다. KTX‧SRT 등 고속철도 할인과 5월 연휴 기간 휴게소 간식 할인 행사도 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