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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24) 조조, 진림의 격문을 읽고 되려 앓던 두통이 사라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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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감시망을 빠져나온 유비는 서주를 차지하고 근거지를 마련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조의 심복인 차주를 죽였습니다. 유비는 조조가 이를 빌미 삼아 쳐들어올 것이 걱정됐습니다. 그러자 진등이 원소에게 구원을 청하면 도와줄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유비는 탁현에 있을 때 스승으로 섬겼던 정현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편지를 부탁했습니다. 정현이 곧바로 편지를 써주자 손건이 밤을 도와 원소에게 전했습니다. 편지를 받은 원소는 생각했습니다.

유비는 내 아우를 쳐서 멸망시켰으니 본래 도와준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 그러나 정현의 뜻을 존중하려면 가서 구해주지 않을 수 없구나.

생각을 정한 원소는 참모들을 불러 조조 토벌을 상의했습니다. 전풍과 저수는 시간을 두고 싸우는 것이 좋다고 했고, 심배와 곽도는 지금 당장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논쟁이 벌어지자 원소는 망설였습니다. 결국은 허유와 순심의 주장을 듣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곧장 조조를 토벌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원소는 즉시 30만 명의 군사를 일으켜 조조를 치고 유비를 구원하기로 했습니다. 곽도가 조조를 치기 전에 그의 죄악을 꾸짖는 격문(檄文)을 배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자, 원소는 서기(書記) 진림에게 격문의 초안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진림은 원래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그는 붓을 들자 망설임 없이 격문을 완성했습니다. 격문에는 조조의 집안을 송두리째 꾸짖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그 부분을 살펴볼까요.

사공(司空) 조조의 할아비 조등은 중상시(中常侍)였고 좌관·서황과 함께 사악한 재앙으로 꼽혔는데 탐욕으로 수탈을 일삼고 질서를 무너뜨렸으며 백성들에게 가혹한 행패를 부렸다. 아비 조숭은 애걸복걸하여 양자가 되었고, 뇌물을 주고 벼슬길로 나섰으며 권세 있는 집안에 금은보화를 수레 떼기로 실어다 주고 부당하게 중신의 자리에 올라 요직에 있던 중요한 인물을 내쫓았다. 조조는 환관의 양자란 추한 씨알로 원래부터 덕이 없었는데 약삭빠르고 날쌘 것만 믿고 남을 능멸했으며 난리를 좋아하고 재난을 즐겼다.

진림은 조조의 죄상을 조목조목 낱낱이 밝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래와 같이 끝맺었습니다.

조조의 수급을 얻는 자는 5천 호의 제후로 봉해지고 5천만 전의 상금을 받을 것이다. 부곡이나 편장·비장·군관 부속 관리 중 항복하는 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널리 은신(恩信)을 베풀어 규정에 따라 선양되고 수상할 것임을 천하에 알린다. 모두에게 천자께서 속박 속에 살아가시는 어려운 처지를 알리고 법에 따라 집행하라.

격문을 본 원소는 대단히 만족했습니다. 즉시 격문을 각처로 보내 널리 알리도록 했습니다. 격문은 조조가 있는 허도에도 알려졌습니다. 조조가 두통으로 누워 있다가 격문을 읽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진땀이 흘렀습니다. 아프던 두통도 싹 가셨습니다. 조조는 진림이 지은 격문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격문으로 조조의 투통을 낫게 한 진림. [출처=예슝(葉雄) 화백]

격문으로 조조의 투통을 낫게 한 진림. [출처=예슝(葉雄) 화백]

격문 속의 일들은 반드시 무략(武略)이 있어야 이뤄낼 수 있다. 진림의 글은 비록 아름답지만 원소의 무략이 모자라니 어쩌겠느냐.

모종강은 조조가 격문을 보고 병이 더하지 않고 오히려 나은 이유에 관해서 설명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가 간웅(奸雄)임을 알 수 없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알아볼 것이고 그 역시 스스로 잘 통하는 친구라고 여길 것이다. 보통 사람은 그와 죄악을 비난할 수 없지만 비난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비난할 것이고 그 역시 기분 좋게 받아들일 것이다. 요즘에도 아첨하는 사람이 있지만 가려운 곳을 벅벅 긁듯 아첨하지 않으면 아첨을 받는 사람은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욕을 하는 사람이 정확하게 정곡을 찔러 욕을 한다면 욕을 먹는 사람이 어찌 시원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어서 조조가 여타 인물들과 다른 이유를 밝혔습니다.

측천무후가 낙빈왕의 격문을 보고 탄식해 말하기를 '이런 인재가 있었는데도 등용하지 않은 것은 재상(宰相)의 잘못이다'라고 했는데, 측천무후가 격문을 보고 노해 낙빈왕을 욕했다면 절대 측천무후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조조가 격문을 보고 노해 진림을 욕했다면 절대 조조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조조가 원소에 대항하려 할 때, 공융이 화친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순욱이 원소의 내부사정을 정확히 꿰뚫는 말을 했습니다. 즉, 참모들 간에 조율이 안돼 내부적으로 변란이 생길 것이라고 하자 공융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조조는 유대와 왕충에게 5만 명의 군사와 승상의 깃발을 주고 서주의 유비를 묶어두라고 지시했습니다.

원소와의 결전이 지지부진하자 조조는 부하 장수들에게 원소군을 맡기고 허도로 왔습니다. 그리고 유대와 왕충에게 서주를 공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유비는 조조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관우에게 조조가 있는 곳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관우는 허세를 떠는 왕충을 간단히 사로잡아 영채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장비도 술에 취한 척하며 허위정보를 흘려 유대를 사로잡았습니다.

왕충을 가볍게 낚아채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왕충을 가볍게 낚아채는 관우.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는 왕충과 유대를 조조에게 보내줬습니다. 손건은 유비에게 공격 받기 쉬운 서주성에 머물지 말고 소패와 하비성으로 나눠 주둔함으로써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뤄 조조에 대항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습니다. 유비는 아우들을 데리고 이 제안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서주성은 손건과 간옹 등에게 맡겼습니다.

유비의 손발 역할을 하는 손건.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의 손발 역할을 하는 손건. [출처=예슝(葉雄) 화백]

모종강은 진림의 격문에 많은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조조의 죄악을 다 열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진림이 격문을 초할 때는 동비(董妃)도 살아 있었고 복후(伏后)도 아직 시해당하지 않았으며 동승 등 일곱 사람과 공융, 경기 등도 아직 해를 당하기 전이라 조조의 죄악이 절반밖에 열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조는 그 격문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는데 만일 동비가 이미 죽고 복후가 시해되고 동승 등 여러 사람 역시 살해된 뒤에 다시 진림의 붓을 빌려 욕하게 했다면 그 통쾌함이 또한 어떠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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