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있네, (복수 뺀 지) 며칠 됐나.”
지난 달 27일 오후 1시 40분, 경기도 용인시 췌장암 환자 고모(60)씨 집을 찾은 정극규 동백성루카병원 진료원장이 고씨의 배를 만져보며 말했다.
“소변이 잘 안 나와요.” (고씨)
“여기(복부)가 차기 때문에 그래요. 자주 차면 (배액)관을 꽂을 필요도 있어요.” (정 원장)
옆에서 고씨 혈압과 맥박, 체온 등 활력 징후를 재던 최현미 간호사가 말을 받았다.
“관 다는 게 너덜너덜 싫다고 하셨어요.” (최 간호사)
“본인이 답답하지 않고 편하다 그러면 안 빼도 돼.”(정 원장)
“많이 답답하진 않아요.”(고씨)
의료진은 많이 불편하면 다시 방문해 복수를 빼주겠다며 진료를 이어갔다. 청진기로 고씨 몸을 살핀 정 원장이 쇄골 주변을 만지며 촉진하자 고씨는 “많이 아팠는데 (약 먹고 나니) 괜찮다”라고 했다. 옆에서 남편 김모(65)씨가 “2~3일간 식사도 잘했다”고 말했다. 최 간호사는 “너무 좋네요. 표정도 훨씬 밝으시네. 혈압도 좋아요”라고 했다. 다리가 자주 붓는다는 고씨에게 최 간호사는 베개나 이불을 받쳐 다리를 위로 하고 손으로 다리를 쓸어주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알려줬다. 최 간호사는 손등에 영양제 링거를 놓고 약이 바뀌었다며 고씨에게 설명했다. 주말에 애들이 왔다 갔는지, 낮에는 뭐 하는지 물으며 고씨 마음까지 살뜰히 살핀 뒤였다.
고씨는 2020년 10월 가슴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발견 당시 암 덩어리가 4.5㎝로 큰 데다 동맥에 붙어 있어 수술이 어려웠다. 진단받은 병원에서 방사선(27회)과 항암(7회) 치료를 했다. 이후 다른 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두 차례 더 받았다. 고씨는 이걸 끝으로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이겨내겠다고 가족에 선언했다. 대학병원에서 써준 호스피스 소견서를 들고 집 근처 동백성루카병원을 찾았고, 1월부터 의료진이 주 1~2회 방문해 진료와 돌봄을 제공하는 가정 호스피스를 받고 있다.
최 간호사는 “중간에 잠깐 음식을 드시지 못해 위기가 왔지만, 그때를 빼면 안정적으로 계시는 것”이라며 “가족 지지 체계가 단단해 힘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 기자가 고씨에게 “집에 계시니 좋으냐” 묻자 “(의료진이) 정말 친절하세요. 컨디션이 좋아요. 집에서 예배드리며 천국 가려고요”라며 환히 웃었다.
고씨는 의료진과 가족 보살핌을 받으며 천천히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임종 시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안 받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도 서명했다.
본인 명의 통장은 남편에게 넘겨뒀다. 김씨는 “금전적인 부분 등 정리할 것들을 미리 얘기하더라. 장례도 수목장으로 해 달라고 했다”라고 했다. 두 자녀에게는 유언처럼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한다. 김씨는 “내게도 ‘주님 섬기며 살라’고 하기에 ‘당신 뜻대로 하겠다’고 했다”라고 했다. 가족은 가정 임종도 염두에 두고 있다.
남은 삶의 행복에 집중하는 호스피스가 웰다잉의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극규 원장은 “호스피스의 궁극적 목적은 전문가 도움을 받아 마지막 시간을 자기 삶의 완성 시기로 만드는 것”이라며 “그러나 대상 환자들이 대학병원 외래에 붙들려 정리할 시간을 뺏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통증만 조절하는 수준의 말기 환자는 빨리 완화의료로 넘기고 호스피스 전문가 도움을 받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에 따르면 대상이 되는 말기암 등 대상 환자 가운데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다. 대부분은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반복하다 마지막을 맞는다.
조력존엄사 논의에 앞서 제대로 된 돌봄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신혜 서울대학교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돌봄·간병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한국 의료체계에선 잘 죽기에 앞서 잘 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몸도 마음도 괴로워 환자가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괴로움을 끝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호스피스 이용이 부족한 이유를 파악하고 호스피스에서 더 나아가 재택의료 등 다른 말기 돌봄 서비스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에 호스피스는 107곳(가정형 38곳) 있다. 병상 수는 1511개에 불과하다. 2021년 암 사망자는 8만여명에 달한다. 정극규 원장은 “인력이 부족하고 적자를 보는 구조라 병원들이 호스피스를 운영하기 어렵다”라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적절한 수가를 보전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