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은혜의 마음 읽기

어떤 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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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4월은 애도의 달이다. 4·3이 있고, 4·16이 있었다. 4·16 세월호 참사는 9년째인데도 애도는 희미해지지 않는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 최근 몇 번 갔다. 논픽션 작가 마쓰모토 하지무라의 『궤도 이탈』을 편집하면서다.

2005년 4월 25일 JR 서일본의 다카라즈카발 도시샤마에행 쾌속 제5418M 열차가 사고를 일으켜 107명이 사망하고, 562명이 부상했다. 이 사고로 아내와 여동생을 잃고 딸이 중상을 입은 아사노 야마카즈라는 사람이 있다. 아사노는 유가족으로서 정부 및 대기업과 진실을 둘러싼 공방을 치열하게 벌이는데, 이 책은 한 작가가 그의 10년 궤적을 쫓는 내용이다.

4·3 제주와 4·16 세월호의 4월
열차 참사 10년 쫓은 일본작가
‘기지촌 엄마’ 추적한 재미학자
단발성 추모 넘어선 역사 기록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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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접한 건 지난해 11월 초로, 번역가는 세월호를, 나는 이태원 참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편집 과정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께 원고를 읽어주길 부탁드리며 찾아뵈었다. “지금은 아이들을 기억하도록 해주는 일이라면 기자든 작가든 영상 제작자든 가리지 않고 다 만나지만, 결국 그 사람들은 일 마치면 끝이고 우리 유가족들은 섬처럼 고립되겠지요.” 고 최유진의 아버지 최정주씨는 프로젝트성 만남의 끝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는데, 그건 애도의 진정성을 분별하는 벼락같은 말이었다.

당신은 정말 애도했는가? 애도 후 자리를 떠 만개한 벚꽃 사이를 거닐며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면, 당신은 두 감정 사이의 널뛰기로 인해 자기를 비난할 수밖에 없게 된다. 파주에 사는 나는 2022년 9월 14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슬픔과 분노에 젖어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추모 공간을 찾았지만, 그 김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러 최우람 작가의 전시를 보면서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그날 자아분열을 겪는 것처럼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건 평소 SNS를 하면서 ‘슬퍼요’와 ‘좋아요’를 몇십 초 간격으로 누를 때도 느끼는 감정이다. 요즘의 탄식은 분초를 다투는 단발성 탓에 쓰라림·침잠·분노·참을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 하고, 그리하여 우리는 늘 실패한 감정을 산다.(이것은 보르네오섬 다약족 사람들이 2~10년에 걸쳐 치르는 장례, 애도와 대척점에 놓인다.)

그러니 관건은 목격자로서의 반복, 되돌아감, 끈질김이다. 손쉽게 죄책감을 덜어내지 않는 것이 참사를 빈번히 목격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윤리성이리라. 『궤도 이탈』의 작가 하지무라는 유가족을 10년간 쫓았고, 미국의 사진작가 애니 아펠은 마리아라는 빈곤 여성을 카메라에 한 번 담았다가 그 가족에게 꼼짝없이 마음이 붙들려 25년간 아티스트이자 목격자로서 함께했다. 같은 선상에서 사회학자 그레이스 조의 기록도 들여다볼 만하다.

그레이스의 어머니는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남자들을 상대하다 그중 한 명과 결혼해 미국에 이민 갔고, 훗날 딸은 그런 자기 어머니를 인류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아 『전쟁 같은 맛』을 썼다. 이 책은 한국전쟁, 전쟁고아, 미군 ‘위안부’ 여성, 미군의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먹던 친인척들, 이민자, 모국의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기억, 인종차별과 정신질환의 관련성 등 온갖 층위가 복잡하게 얽힌 연구 에세이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에 나오는 유령처럼, 어느 날 ‘옥희’라는 유령의 목소리가 그레이스 엄마의 세계를 지배한다. 조현병을 앓게 된 엄마는 50대 중반부터 죽을 때까지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했다. 이런 이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게 마련이지만, 딸이 엄마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그는 엄마라는 장소로 첨벙 뛰어들어 유령의 목소리를 함께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방구석에서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문지방을 결코 넘지 못하는 엄마에게 다가가기 위해, ‘미친 사람’으로 지목된 엄마가 실은 사회적 요인으로 병자가 된 것임을 밝히기 위해 십몇 년의 세월 동안 엄마 곁에 붙어 위로하고, 먹이고, 이해하려 애쓴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는 오랜 애도가 이어지는데, 그 글들이 독자에게도 조현병자의 삶에 몇 번이고 들어가게 한다.

만남, 애도, 연구, 취재가 지속한다는 것은 세간에 떠도는 말과 상관없이 우리가 진실에 가까운 것들을 채집하도록 도와준다. 지속성을 갖는 이들은 종종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의 문제를 자기 안에 내포하고 있다.

그레이스는 그 자신이 유령을 다독이거나 유령과 싸우는 장소가 되면서 그 전에는 자기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조현병자나 양극성 장애인들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펼쳐 보여준다. 그건 스쳐 지나간 사람들, 짧게 머물렀던 사람들은 알지 못할 심원함이다. 시간의 축적은 마침내 한 사람의 마음속에 넓은 터를 만들어 역사가 그 안에 새겨지도록 하는 반면, 짧게 목격하고 떨쳐냈던 이들은 훗날 예전의 자신을 반추하면서 알맹이 없는 공허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