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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무수익 무보수’ 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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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가치투자는 저평가된 주식을 사서, 오른 뒤 파는 방식이다. 가치 평가 스타일은 저마다 다르지만, 최종 목표는 같다. ‘흙 속의 진주’ 찾기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부터 이어진 미국의 가치투자는 뿌리가 깊다.

특히 1970~80년대가 전성기였다. 워런 버핏, 존 네프, 필립 피셔 같은 전설적인 투자자가 다수 탄생했다.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바뀌고, 가치평가가 어려운 무형자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다. 그래도 가치투자의 핵심 원리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시장에 살아 숨 쉰다.

한국은 가치투자가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다. 주식시장 역사가 짧고, 규모도 작다. 외생 변수에 크게 흔들리는 경제 구조도 약점이다. 기업은 배당 등 가치를 높이는 활동에 인색하다. 기껏 키웠다 하면 회사를 분할하는 일도 흔한데 이 과정에서 주주의 권익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이런 환경에서도 최준철·김민국 대표는 가치투자를 모토로 대학 시절 창업한 VIP자산운용을 20년 만에 3조원대 회사로 키웠다. 철학을 공유하고, 오랜 기간 동업하는 모습이 가치투자 전설들의 행로와 묘하게 닮았다. 이 자체가 한국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이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운용보수를 받지 않는 펀드를 내놓았다. 사모펀드나 자문 시장에선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살 수 있는 공모펀드에 성과를 연동한 건 처음이다. 수익이 없으면 보수도 없다는 건 고객 돈을 책임지고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일단 직전 1년 수익률이 마이너스면 다음 분기엔 보수를 받지 않는다. 수익이 나면 약 10%를 성과 보수로 받는다. 1년 이하로 투자하면 수익과 관계없이 연 0.8% 보수를 적용한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취지다.

이름은 ‘한국형 가치투자 펀드’다. 단기 트렌드에 휘둘리기보다 꾸준히 오래가는 펀드로 키우겠다는 의지다. 테마만 좇고, 일희일비하는 투자가 유난히 판을 치는 시기라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공격적인 보수 정책으로 급격히 쪼그라든 공모펀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명분까지 담았으니 설계를 참 잘했다.

모든 게 좋아도 중요한 건 실력, 즉 수익률이다. 포부대로 국민의 노후와 함께 가는 펀드로 성장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