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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알파고가 소리내다

이민은 일자리 뺏는게 아니다…독일은 매년 6만명 받아들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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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알파고 시나씨 기자,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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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민 확대에 대한 찬반 논의가 활발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부가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민 확대에 대한 찬반 논의가 활발하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알파고 같은 사람이라면 난 외국인의 이민을 찬성하지.” “이상한 외국인들이 아니고, 당신 같은 외국인 친구들이 우리나라에 와야 좋은데.”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알파고의 지식램프’ 채널에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 외국인 친구들을 부르고 그 나라의 근현대사나 외교적인 사항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이를 시청한 한국인들은 비슷비슷한 생각을 댓글로 남긴다. 정부나 시민단체의 초청을 받아 이민에 대해 강연도 하는데 이를 통해 한국에 외국인들이 이민 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고민한 적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 기업 중에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곳이 많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들은 기본이고, 한국 제품을 자신의 나라로 가지고 가는 외국인 사업가들은 한국인들과 활발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여기에 한국에 있는 115개국 대사관의 직원이나 유학하러 온 외국 학생들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수의 외국인이 한국인과 소통한다. 이 중에는 결혼 후 배우자 때문에 한국에 살기로 결심, 귀화를 통해 이민자가 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아 입국해 일정한 기간만 머무른 후에 한국을 떠나야 하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불법체류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혹자는 “이민이 보편화했다고 해서 훨씬 개방적인 서양 국가들처럼 정책을 바꾸면 불거지는 치안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한국보다 이민하기 더 쉬운 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프랑스ㆍ호주 등의 치안 불안이 이민자들에 의해 더 심각해졌다고 단정할 순 없다. 이 나라 자체가 자의든 식민지 시대의 영향에 의한 타의든 상대적으로 이민에 열려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도 세계적으로 똑똑한 교수 몇천 명이 한꺼번에 이민을 오게 될 경우 그 지역의 사회적 풍습ㆍ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 받아들일 의향 검증해야  

한국은 캐나다나 미국 같은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고 오랜 시간 단일민족으로 구성돼 생활하면서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해 온 곳이다. 그만큼 문화적 장벽이 높다. 이런 이유로 한국 문화에 대해서 이해도가 없는 사람이 이 문화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검증 없이 이민자가 되면 큰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민을 원하는 사람이 한국 문화에 동화하지 않는 한 받아주지 말자는 게 전혀 아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대구 대현동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2월 15일 이슬람사원 공사현장 인근에서 '2022 대현동 주민들을 위한 연말 큰잔치'를 열고 돼지고기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대현동 이슬람사원 건립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2월 15일 이슬람사원 공사현장 인근에서 '2022 대현동 주민들을 위한 연말 큰잔치'를 열고 돼지고기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중동 출신이다 보니 돼지고기를 못 먹고, 술도 못 마신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문제없었다. 제일 친한 친구 중에는 한국인이 절반 넘는다. 중동 배경을 아예 무시하지도 않고, 중동 배경에만 집착하지도 않았다. 중동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니 생각이 유연해지고 만나는 이들도 폭넓게 됐다. 이처럼 이민 희망자가 한국 문화와 사회적 풍습을 얼마나 받아들일 의향을 갖고 노력하는지를 검증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글로벌 경제 속 이민 확대 요구 커  

결혼을 통한 귀화와 같은 이민만 신경 쓸 시기도 아니다. 한국에 정착해 일하고 생활할 의향이 있다면 비자에 따른 체류 제한을 받지 않고 머무를 수 있도록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한국은 다른 방식의 이민을 체계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한국 경제가 너무 많이 다른 국가들과 엮이게 됐기 때문이다. 자급자족 사회라면 모를까 한국인들의 밥그릇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제화됐다. 한국 기업들이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외국인 고용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기업이 생산 제품을 전 세계인들이 소비할 것인데, 다양한 지역에서 온 전문가들과 함께 생산해야 국제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본사에 가면 구내식당에서 한식만큼 외국 음식도 나온다. 거기서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엔지니어들이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미나리꽝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나리를 수확하는 모습. 송봉근 기자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미나리꽝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나리를 수확하는 모습. 송봉근 기자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국제적으로 영업하는 한국 기업에는 언어적인 차원에서 처리가 되어야 할 수많은 업무가 있다. 그러한 업무들을 해당 외국어를 잘하는 한국인들을 채용하면서 처리할 수 있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직원들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들의 경우 오랫동안 한국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살기가 불편할 것이다. 그 외국인 전문가들을 단기간 쓰고 버릴 게 아니라면 그들에게 이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환경이 생기지 않을까.

일자리 뺏는 게 아니라 부족한 자리 채워

일손이 달리지만 내국인들이 선뜻 하지 않으려 해 일손이 부족한 산업 현장의 문제도 언급하고 싶다. 한국 산업이 기술적으로 발전하다 보니 단순 노동 일자리 시장이 어려워졌다. 건설 현장이나 농업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러한 분야에서 일하려고 수많은 외국인이 오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손이 필요한데 부족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들어온다. 이들에게 한국에 정착해 일할 수 있도록 이민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 그래야 산업 현장의 노동력 부족 현상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도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한스 에크하르트 좀머 독일 연방 이민난민청장과 회담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4일(현지시간) 한스 에크하르트 좀머 독일 연방 이민난민청장과 회담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연합뉴스]

독일 정부는 최근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로자의 이민 촉진 개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연간 6만 명의 해외 근로자들이 독일에 정착해 부족한 일손을 채우게 하겠다는 정책이다. 방안도 참고할 만하다. 우선 독일에서 인정되는 전문대 또는 대학의 학위를 가진 사람이나 기업과의 고용계약을 맺은 사람이 대상이다. 관련 일자리의 2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이 독일에 들어와 최소한의 직업훈련을 받고 구직하는 방법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는 학위나 일 경험이 없어도 자신이 가진 자격증이나 언어, 기술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기회 카드'를 부여한다고 한다.

한국이 유럽 국가들처럼 갑자기 관리 못 할 많은 수의 외국인을 이민으로 받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민의 문을 꽉 닫아버리면 변화하는 경제 상황과 노동 인력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 이 사이를 잘 연구하고 거기에 맞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박성제 변호사(법무법인 추양 가을햇살)가 쓴 ‘저출산 문제를 이민 정책으로 풀 수 없다’는 제목의 칼럼이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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