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품위 있는 죽음 선택할 권리, 사회적 논의 확대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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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암환자가 혈액투석기 등의 연명의료 장치를 달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암환자가 혈액투석기 등의 연명의료 장치를 달고 있다. [중앙포토]

존엄사 가능 요양병원 7.3%뿐, ‘웰다잉’ 어려워

사전의향서 작성 늘리고 재택의료 확대 검토해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다. 실존적 존재인 인간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선구(先驅)할” 때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임종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의 귀결은 죽음이지만 인간만큼은 더욱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존엄사가 고귀한 선택으로 인식돼 가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5년 됐지만 아직 개선점이 적지 않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지난해 말까지 25만여 명이 존엄사를 택했다(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그러나 이 중 21만여 명(83%)이 임종 직전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이 합의하거나 환자의 뜻을 추정해 중단하는 등 ‘벼락치기’ 결정을 내렸다. 사전의향서를 활용한 존엄사는 5.9%에 불과했다.

임종 장소도 논란이다. 지난해 사망자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숨졌다. 네덜란드(29.1%), 스웨덴(42%), 미국(43%) 등 주요 국가보다 월등히 많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편안히 눈감기를 원하지만 재택의료 부족, 사망 시 변사 처리 등 제도적 문제로 현실이 녹록지 않다. 대안으로 재택 임종 케어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확대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요양병원에선 존엄사를 택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병원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있어야 하는데, 국내 요양병원 1433곳 중 1328곳엔 이 제도가 없다. 임종실도 준비돼 있지 않고 대부분 6~8인실, 20인실의 병상에서 숨진다. ‘웰다잉’과 거리가 먼 ‘방치 사망’인 셈이다. 일부 말기 환자들은 존엄사를 택할 겨를도 없이 극단 선택을 하기도 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다.

궁극적으로는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 사전의향서 제출을 늘리고, 연명의료 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임종이 임박해야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데 여기서 오는 갈등이 더 크다. 다른 선진국처럼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말기 환자부터로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를 시작해 봐야 한다. 그래야만 말기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며칠 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삶을 끝내는 프랑스식 모델이 담긴 법안을 여름 전까지 마련하겠다”고 했다.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자유의지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안락사는 국내에서 논의하기 어렵지만 존엄사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를 모아 볼 필요가 있다. 생명 존중은 더할 나위 없이 숭고한 가치지만,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도 자유 의지를 지닌 시민에게는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