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과 출신도 코딩 배운다…교수·교재·학비 없는 '3無 학교' 정체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대형 코딩 실습실 '클러스터'의 모습. 애플의 아이맥(iMac) 등 컴퓨터 100여대가 있고 벽에는 독특한 그림이 걸려있다. 파리=장윤서 기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대형 코딩 실습실 '클러스터'의 모습. 애플의 아이맥(iMac) 등 컴퓨터 100여대가 있고 벽에는 독특한 그림이 걸려있다. 파리=장윤서 기자

“교사도, 교재도 없습니다. 물론 학비도 없고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찾은 프랑스 파리의 정보기술(IT) 교육기관 에꼴42(Ecole 42)의 홍보 담당자 샤를 모블랑은 이곳을 “어떤 한계도 없는 학교”라고 소개했다.

에꼴42는 2013년 프랑스 이동통신사 프리모바일의 자비에르 니엘 회장이 개인 재산 7000만 유로(약 1000억원)를 투자해 세웠다. 지금까지 수료자 전원이 취업 또는 창업했고, 유니콘 기업도 배출했다. 설립 초기에는 학위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최고 레벨인 21레벨에 도달하면 석사 학위에 준하는 자격을 받는다.

교사가 없기에 교실도 없다. 대신 애플의 아이맥(iMac)과 델 컴퓨터가 100여개 놓여있는 대형 코딩 실습실 ‘클러스터’가 있다. 거대한 PC방을 방불케 하는 이곳에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 나이의 학생들이 과제를 하거나 그룹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정해진 자리 없이 각자 원하는 곳에 앉아 시스템에 로그인만 하면 ‘수업’이 시작된다.

클러스터의 벽과 기둥마다 독특한 그라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예술) 같은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닌텐도 스위치 게임기, 바둑판이 놓인 오락실이 눈에 띄었다. 한국 학생 이경은(34)씨는 “매년 전 세계 에꼴42 캠퍼스 학생들과 ‘코딩 게임’을 한다. 올해 2등을 해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외국 학생들이 바둑을 체스처럼 생각해 즐겨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게임룸에 바둑판이 놓여있다. 파리=장윤서 기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게임룸에 바둑판이 놓여있다. 파리=장윤서 기자

IT 강국 韓 청년들, 프랑스로 떠난 이유

에꼴42에 입학하기 위한 학력이나 자격 조건은 없다.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온라인 테스트와 4주간의 선발 과정인 ‘라 피신(La Piscine·수영장)’을 통과해야 한다. 실제 에꼴42의 교육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프로젝트 형식의 과제를 수행하는 일종의 선발 시험이다.

모블랑은 “인지와 논리, 암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문제들로 구성돼 코딩을 하나도 모르는 학생들도 할 수 있다”며 “매년 3000명이 지원해 600명이 피신에 들어와 200명을 최종 선발한다”고 말했다. 현재 에꼴42와 제휴된 26개국 47개 캠퍼스에 학생 1만8000여명이 재학 중이다. 파리 캠퍼스에만 약 4200명이 소속돼있고, 한국 학생도 20여명이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학생들이 모여있다. 사진 교육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학생들이 모여있다. 사진 교육부

에꼴42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은 코딩을 접해보지 못한 ‘문과’ 출신이었다. 이경은씨는 한국 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직장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에꼴42에 지원했다. 이씨는 “피신에서 C언어를 처음 배웠다. 너무 재밌어서 밤을 새워가며 했다”고 말했다. 최규봉(32)씨는 “한국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며 “코로나19로 인턴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혼자서 코딩을 조금씩 하다가 (에꼴42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에꼴42의 자기 주도적 학습 시스템을 장점으로 꼽았다. 학교에서 커리큘럼을 제공하지만 과제를 선택하는 건 학생의 몫이다. 과제를 해결하면 경험치가 주어지고, 레벨이 올라 더 어려운 과제가 열리는 등 게임처럼 운영된다. 최씨는 “한국 고등학교에서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할 때는 책상에 앉기가 싫었는데 여기서는 하루종일 코딩을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동료에게 설명·설득하며 평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에서 학생이 에꼴42의 교육과정을 그래픽으로 나타낸 화면을 보고 있다. 사진 교육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에서 학생이 에꼴42의 교육과정을 그래픽으로 나타낸 화면을 보고 있다. 사진 교육부

에꼴42는 평가도 동료들끼리 한다. 스스로 과제를 마친 뒤 올리면 3명의 동료 평가자가 무작위로 배정된다. 이들이 과제물의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한다. 이경은씨는 “나보다 레벨이 낮은 친구가 매칭돼도 설명을 해주면서 더 이해하게 된다”며 “실제 현업에서도 동료끼리 코드 리뷰를 하는 것처럼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블랑은 “에꼴42는 회사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전통적 교육시스템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를 기르기에는 부족했다는 얘기다. 한국 학생 이동빈(25)씨는 “당장 1년, 3년 뒤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시시각각 바뀌는 기술에 적응하고 습득하는 방식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한국 학생들과 홍보 담당자 샤를 모블랑(오른쪽 두번째)이 장상윤 교육부 차관(오른쪽) 인사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Ecole 42)'의 한국 학생들과 홍보 담당자 샤를 모블랑(오른쪽 두번째)이 장상윤 교육부 차관(오른쪽) 인사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한국에서도 2019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이노베이션 아카데미에서 에꼴42의 시스템을 도입한 ‘42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에꼴42와 마찬가지로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스스로 학습해야 하지만, 교육 기간이 2년이라는 점이 다르다. 42서울에서 1년간 근무했다는 이씨는 “시스템은 동일하지만 학생들 문화에서 차이가 있다. 프랑스가 좀 더 개방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날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비롯한 교육부 직원들도 에꼴42를 찾았다. 앞서 교육부는 2026년까지 디지털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교육부는 “에꼴42의 사례를 통해 국내 시사점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