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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타이즈? 너나 신어"…이랬던 고2, K발레 '돈키호테' 주역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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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국립발레단 무용수. 12~16일 국립발레단이 첫선을 보이는 '돈키호테' 재안무 무대 주역이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포즈를 선보이고 있다. 김종호 기자

구현모 국립발레단 무용수. 12~16일 국립발레단이 첫선을 보이는 '돈키호테' 재안무 무대 주역이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내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포즈를 선보이고 있다. 김종호 기자

국립발레단이 올봄, 유럽에 간다. 독일과 스위스의 초청을 받아서다. 발레의 발원지로 콧대 높은 유럽에서 일명 'K 발레'의 날개를 펼쳐 보이는 것. 들고 가는 작품은 '해적(Le Corsaire)'이다. 5월, 먼저 스위스 로잔에서 한·스위스 수교 60주년, 이어 독일 비스바덴에서 한·독 수교 140주년 축하 공연 무대를 장식한다. '해적'은 노예제를 다룬 내용 및 다소 긴 러닝타임 때문에 전막 공연의 문턱이 높은 작품이다. 이를 국립발레단이 2020년 재해석했다. 21세기에 맞는 젠더 감수성도 지키면서 속도감을 더하고, 작품의 핵심 DNA는 살린 일석삼조 무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매년 무대에 오르는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재해석의 주인공은 발레단의 재주꾼, 솔리스트 송정빈 무용수.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의 제안으로 재안무를 맡았다. 이번 해외 초청 공연 조율 과정에서 독일과 스위스 측은 "유럽의 일반 유료 관객들도 익숙하면서 한국 발레단만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는 클래식 작품을 보여달라"고 요청해왔다고 한다. 국립발레단의 '해적'의 재안무 버전은 독일과 스위스가 원한 정답이었다.

전통의 재해석엔 항상 논란이 따른다. '해적'도 그랬지만 국립발레단이 오는 12~1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처음으로 올리는 재해석판 '돈키호테' 전막 공연도 그렇다. 발레 '돈키호테'엔 돈키호테가 없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기반으로 했으나 발레의 특성상,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일 수 있는 젊은 커플인 키트리와 바질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가도록 안무 됐기 때문. 전설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가 안무한 버전에 노년의 돈키호테가 깨알 조연만 머무르는 까닭이다.

국립발레단의 재안무작은 그러나 스토리를 대폭 수정했다. 잠깐, 그렇다면 키트리의 32회전 푸에테 턴과 바질의 파워풀한 공중회전 앙투르낭이 없다는 얘기인가. 돈키호테 역을 맡은 무용수, 구현모 드미 솔리스트를 최근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나 물었다. 구현모 무용수는 국립발레단의 떠오르는 별로, 적확한 테크닉과 깊은 연기력으로 인상 깊은 무대를 선물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돈키호테' 포스터. 여자 주인공 키트리의 시그니처 포즈 중 하나.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 '돈키호테' 포스터. 여자 주인공 키트리의 시그니처 포즈 중 하나. [국립발레단]

발레 '돈키호테'의 주역이라면 당연히 바질일 줄 알았어요.  
"확실히 원작 발레에선 돈키호테는 조연이죠. 그런데 정빈이 형이 재안무한 버전에선 돈키호테라는 인물에도 초점을 둬요. 그가 왜 이렇게 기사도에 빠졌는지를 개연성 있게 살려냈어요. 제목이 '돈키호테'인데 돈키호테 스토리가 빠지면 이상하잖아요. 이번 '돈키호테'는 한국 발레가 이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는 무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국립발레단만의 레퍼토리가 생겼다는 의미도 크고요. (마리우스) 프티파도 작품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걸 알면 좋아할 거에요(웃음)."  
키트리 32회전 푸에테는 못 보는 건가요?  
"설마요(웃음). 키트리와 바질의 배리에이션은 그대로 살렸습니다.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돈키호테와 환상의 여인 둘시네아의 일명 '꿈의 장면(dream scene, 드림 신)'이에요. 돈키호테가 꿈속에서 큐피드 덕에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둘시네아와 함께 파드되(pas de deux, 2인무)를 추죠. 이후 돈키호테가 키트리와 바질의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스토리의 개연성도 살아납니다."  
주인공이 돈키호테로 바뀐 게 아니라, 돈키호테도 주인공 중 하나로 된 거군요. 리허설 분위기는요?
"새로운 돈키호테이다 보니, 단원들 모두 즐겁게 재미있게 임하고 있어요. 젊은 돈키호테로 변신하는 장면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지도 포인트입니다. 의상 및 무대 담당해주시는 스태프들도 함께 즐겁게 고민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젊은 돈키호테는 덜 어려워요. 있는 그대로 춤을 추면 되니까요. 할아버지가 된 돈키호테는 거동은 불편하지만 기사도 정신은 살아있는 형태를 손동작이나 마임, 표정과 시선 등으로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여러 가지를 연습해보는 중이에요. 정빈 형이 연기력이 뛰어나니 배우는 것도 더 재미있어요."  
테크닉은 기본, 손끝과 시선처리 등도 놓치지 않으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구현모 국립발레단 무용수. 김종호 기자

테크닉은 기본, 손끝과 시선처리 등도 놓치지 않으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구현모 국립발레단 무용수. 김종호 기자

구현모 무용수의 강점으로 꾸준함이 많이 언급되던데요.  
"매일 연습(클래스)은 무조건 열심히 해요. 바(barre)워크(바를 잡고 하는 연습)이던, 센터 워크이던, 를르베(뒷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서는 것)를 할 수 있는 구간은 무조건 하려고 합니다. 하루 쉰 다음 날은 절대 안 쉬고요. 그 다음날이 너무 힘들어요."  

발레를 조금 늦은 고등학교 때 시작하셨는데요.

"진짜 친한 친구가 (국립발레단) 김명규B의 권유로 고2에 시작했죠. 흰색 타이즈를 신는 게 너무 싫어서 명규에게 '야 너나 타이즈 신어'라고 했는데, 제게 '넌 발레해야 성공할 팔자'라는 거에요. 긴가민가 가봤는데 어라? 재미있더라고요."  
구현모 무용수의 점프. 고2에 발레를 시작했다. 김종호 기자

구현모 무용수의 점프. 고2에 발레를 시작했다. 김종호 기자

고2에 시작했는데 이렇게 성공하다니, 천재네요.  
"(웃으며) 진짜 아닌 게요, (고교) 콩쿠르에 죄다 떨어졌어요. 그래도 계속 연습했더니, 재미가 붙더라고요. 그러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덜컥 붙은 거예요. 처음엔 좋았는데 들어가서 마음고생 했어요. 저만 못하는 거 같아서 연습을 무리해서 하고, 부상으로 이어졌죠. '무릎이 좀 덜컹거린다'는 싶어서 병원에 갔더니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없다는 거에요. 발레를 바르게 하는 방법을 모르고 냅다 지르기만 했던 거죠. 방황도 했지만 결국 제겐 발레 밖엔 없더라고요. 발레가 참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어요(웃음). 부상이 약이 됐다고 생각해요. 나락에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걸 체험했으니까요."  
'드림 씬'을 강조하셨는데, 구현모의 드림은 뭔가요.
"작품 중엔 '스파르타쿠스' 처럼 남성미의 끝을 보여주는 역할이 꿈이에요. '지젤'에서도 (주인공인) 알브레히트보다는 악역인 힐라리온에 끌리고요. 개인적으론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나 패트릭 비셀(1957~1987) 전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무용수처럼 멋있게 춤추는 무용수가 꿈입니다. 하지만 사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좋아요. 예전엔 관객이 저를 평가한다고 생각해서 떨렸는데, 이젠 제가 좋아하는 분들을 초대해서 함께 즐긴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함께 즐기러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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