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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중단, 임종 임박해야 가능…“말기환자도 적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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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이 지난 5년 동안 국내 임종 문화를 상당히 바꿔놓았지만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 논의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행위 확대 문제다. 현행 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행위를 7개로 규정한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ECLS)·수혈·혈압상승제 투여 등이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을 만들 때 종교계의 반대가 매우 심해 매우 엄격하게 만들었다. 서울대 의대 허대석 명예교수는 “연명의료 중단 관련 제도를 법제화한 나라 모두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한국만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해 임종이 임박해야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게 해 혼란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환자는 고통받고, 의료진은 말기 환자(보호자)에게 언제쯤 연명의료 결정에 관해 설명할지 혼란을 겪는다. 매일 1000명쯤 이럴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정숙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센터장은 “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기가 임종기로 한정돼 있는데, 이를 말기로 당기는 걸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허 교수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환자와 중증 치매환자도 연명의료 중단 대상에 포함하는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대만은 이미 4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종기 환자에게 강제로 영양 공급하는 걸 중단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전남의 한 70대 노인은 “의식도 없는 사람에게 호흡기를 끼우고 줄로 음식을 넣어주는데,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코에 튜브를 끼워 영양을 강제 공급하는 경관영양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19세기 말의 미국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평화주의자인 스콧 니어링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면서 곡기부터 끊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언젠가는 (경관영양 중단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인의 인식 개선도 풀어야 할 과제다. 조정숙 센터장은 “활동 의사의 7.8%만이 연명의료결정제 교육을 이수했다. 의사와 간호사의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할 때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는 게 중요하다. 서홍관 원장은 “언제 어떻게 건강이 나빠질지 모르니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써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웰다잉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원혜영 전 의원은 “웰다잉지원법이나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국 626곳의 보건소(보건지소·분소 포함) 중 142곳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웰다잉이나 연명의료 중단 관련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도 113곳(광역 14곳, 기초 99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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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도입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은 연명의료결정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소극적) 안락사 도입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법안은 참기 힘든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희망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약물 주입 등으로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종교계와 의료계는 “자살을 부추길 수 있고, 사회·경제적 약자가 존엄사란 이름으로 죽음을 강요당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허대석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대상을 말기 환자로 통일하고,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 등으로 넓히는 걸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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