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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설 곳 없는 요양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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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5년, 어디까지 왔나

존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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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로 인해 요양병원 사망자가 많이 늘고 있다. 국립연명의료 관리기관이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최근 3년간 의료기관별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 요양병원 사망자는 2019년 6만2014명에서 2021년 6만7629명으로 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총사망자의 21.3%, 의료기관 사망자(요양원 제외)의 32.9%다. 임종 무렵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숨지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요양병원 사망자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연명의료를 중단(유보)하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하게 돼 있다. 지난해 말 1433곳의 요양병원 중 105곳만 있다. 윤리위가 없는 데서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고,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사실을 조회조차 할 수 없다. 요양병원은 심폐소생술 금지요청서(DNR)라는 서식을 여전히 활용한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인공호흡기 금지 등으로 확대해 활용한다. DNR은 법에 근거가 없는데도 정부는 눈을 감고 있다.

부산시 해운대구 간암환자 A씨(80)는 암이 재발하면서 합병증이 와서 요양병원에서 1년 정도 보내다 지난해 말 숨졌다. 코로나19가 겹치면서 자녀 면회가 거의 끊겼고 간혹 영상통화를 했다. 그는 큰아들(57)에게 “아프다”고 호소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평생 표현을 안 하던 분인데, 앓는 소리를 해서 놀랐다. 맘이 쓰였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말한다. A씨는 점점 숨이 가빠졌고 호흡보조기를 달았다. “임종이 임박했다”는 전화를 받고 달려갔지만 이미 눈을 감은 상태였다. 아들은 “임종 3주 전 면회를 했지만 의식이 혼미해진 상태라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임종도 못 하다니…”라고 죄스러워했다. A씨는 요양병원 8인실에서 숨졌다. 마지막 순간 의료진이 커튼을 쳤을 것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A씨의 요양병원에는 임종실 같은 게 없다. 이런 게 있는 데도 거의 없다. 임종 직전이지만 1인실로 옮기지 않는다. 대부분 6~8인실, 심지어 20인실의 원래 병상에서 숨진다.

임종실 드물고 호스피스 서비스 7곳뿐…요양병원서 웰다잉, 한국선 꿈도 못꿔

그나마 A씨는 고통을 덜 겪었다. 90대 여성 말기암 환자는 요양병원에서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쓸 상황이 아니었다. 이 환자는 “너무 힘들다. 그만 살고 싶다”며 신음했다. 하지만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두고 자녀의 의견이 엇갈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다 2주 만에 숨졌다. 이 병원 응급의학교 교수는 “요양병원 당직 의사는 대개 아르바이트가 많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 무관하게 무조건 응급실로 보낸다”며 “일부는 요양병원으로 돌아가서 숨진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 의사는 “환자가 위급한 상황이 오면 무조건 종합병원 응급실로 보내고 잠깐 회복했다 돌아오고, 이런 걸 서너 차례 반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 임종도 운이 좋아야 한다. 종합병원에서도 품위있게 죽기 힘든데, 요양병원은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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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일찍 작성하는 이유는 생의 마지막 정리 계획을 세우고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가 7곳에 불과하다. 이윤성(법의학)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일부 요양병원이 병실을 채우기 위해 연명의료를 하기도 한다”며 “정부가 요양병원 임종 실태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령화로 인해 요양병원 사망자가 느는데, 임종 돌봄 수가를 신설해서라도 경제 수준에 맞게 품위 있는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평석 대한요양병원협회 회장은 “요양병원 환자에게 인공호흡기 부착을 두고 갈등이 생길 일이 별로 없다. 따라서 시·도별 요양병원 2곳이 윤리위를 갖추게 하고 이를 함께 활용하면 된다”며 “임종실을 만들라면서 수가를 주지 않는다. 요양병원에 맞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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