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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엄마 살려줘” 비극…‘동반 극단 선택’ 아닌 범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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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끊이지 않는 ‘살해 후 자살’ 아동 피해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2003년 인천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30대 엄마와 세 자녀의 사망 사건은 사고 직전 상황이 상세히 알려지며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목격자 말에 따르면 아파트 14층 계단에서 아이 세 명이 심하게 울며 “엄마 살려줘 안 죽을래”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엄마는 두 아이를 먼저 계단 창문으로 던진 뒤 막내를 안고 뛰어내렸다.

당시 언론은 ‘아이 셋과 투신한 엄마의 눈물 사연’과 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여론도 자녀 살인을 비판하기보다 죽을 수밖에 없던 고통스러운 상황에 연민을 보냈다. 2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18일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40대 가장이 아내와 세 자녀를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졌다. 부부가 겪은 경제적 고통에 초점이 맞춰지며 자녀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는 희석되는 분위기다.

벼랑 끝에 몰려 극단 선택한 부부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살해 후 자살(murder-suicide)’을 바라보는 인식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참변에 이른 비극에 감정을 이입하고, ‘동반자살’ 같은 표현으로 동정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에 앞서 자녀를 죽이는 것도 명백한 살인 행위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의 평균 나이는 5.8세
“왜곡된 망상적 가족주의 원인”
감정 이입이나 동정 자제해야
“비속살인죄 신설하자” 움직임

비극인가 살인 범죄인가

지난달 18일 ‘살해 후 자살’이 벌어진 인천시 미추홀구의 사건 현장. 철문이 굳게 잠겨 있다. 윤석만 기자

지난달 18일 ‘살해 후 자살’이 벌어진 인천시 미추홀구의 사건 현장. 철문이 굳게 잠겨 있다. 윤석만 기자

지난달 28일은 40대 남성 A씨의 ‘살해 후 자살’ 사건이 꼭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후 사건 현장인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주택가를 찾았다. 동네는 평온한 분위기였지만, A씨의 자택은 철문이 굳게 닫힌 채 스산해 보였다. 이곳 2층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업주는 “집이 계속 비어 있다”고 말했다. 철문 앞에는 대형 쓰레기봉투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단란했던 일가족의 참극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듯했다. 한 주민은 “평범한 가족이었는데 도저히 실감이 안 난다”며 “크게 빚을 졌다는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극단 선택을 할 정도면 그 고통이 오죽했겠느냐”고 가슴을 쳤다. 주민들은 “아이들의 목숨까지 빼앗은 건 잘못”이라면서도 A씨 가족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언론의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건 발생 후 일주일 동안의 기사 80여건을 분석해보니 초기엔 ‘일가족 숨진 채 발견’과 같은 발생 보도에 이어 ‘가장이 살해 후 극단선택’ 같은 사건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 후엔 주민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A씨의 경제적 고통에 관심이 쏠리더니, 마지막에는 살해된 딸이 쓴 “엄마 사랑해”라고 적힌 그림이 알려지며 동정 여론이 커졌다.

사건을 보도하는 동안 다수 언론은 일가족 참변 또는 참극이라고 지칭했다. 정확한 표현인 ‘살해 후 자살’이라고 적시한 곳은 많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발표한 경찰의 시각도 비슷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18일 오후 2시쯤 기자단에 처음 관련 소식을 공유했는데, “가장이 가족 4명을 살해한 후 본인도 자살한 걸로 추정한다”면서도 “미추홀구 일가족 변사사건”이라고 지칭했다.

문준규 미추홀경찰서 형사과장은 “살인사건이 벌어져 곧바로 조사했고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며 “경찰이 수사하는 범죄 항목에 ‘살해 후 자살’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일반 자살 사건과 달리 ‘살해 후 자살’ 데이터가 별도로 집계되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통계를 작성하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계속되는 가족 잔혹사

지난해 6월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조 모양(사망 당시 10세)도 ‘살해 후 자살’의 피해자다. 경찰 수사 결과 부모가 조 양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차를 타고 바다로 입수해 익사했다. 당시 경찰은 “우울증으로 일가족이 극단 선택을 한 사건”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홍영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양의 피살 사실보다 자살에 이른 부모의 사연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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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후 자살’에 대한 잘못된 편견 중 하나는 명백한 타살인데도 피해자가 자살한 것처럼 오인된다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0~2019년 언론에 보도된 사건 462건을 조사해보니 ‘동반자살’로 352건(82.6%), ‘살해 후 자살’로 74건(17.4%)이 검색됐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자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죽기 때문에 자살로 불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 의원이 보건복지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3~2020년 ‘살해 후 자살’의 가해자는 416명이었다. 매주 한 번꼴로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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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환 가톨릭대 교수팀의 분석에서는 2013~2017년 ‘살해 후 자살’ 피해자 242명 중 82명(33.9%)은 아동이었다. 항거 능력이 없는 미성년 자녀 살해는 ‘동반자살’이 아니라 명백한 아동학대 살해다. 아동권리보장원이 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아동학대 사망자 대비 ‘살해 후 자살’ 피해 아동 비율은 2019년 21.4%에서 2020년 27.9%, 2021년 35%로 늘었다. 평균 연령은 5.8세였다.

이 같은 비극이 계속되는 이유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 인식”(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탓이 크다. 김 교수는 “부모·자녀 사이의 공고한 위계 구조가 아들·딸의 생명마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왜곡된 형태로 나타난다”며 “부모 없이 살아갈 자녀의 미래가 불행할 거라는 가족주의적 망상이 범행의 가장 큰 동기”라고 설명했다.

존속살인은 있고 비속살인은 없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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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문화는 살인 사건에서도 부모와 자녀를 차별한다. 존속살인을 규정해 놓은 형법 250조는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에 대해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을 명시해 놨다. 그러나 비속살인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형법에선 일반 살인죄(5년 이상 징역)로 다룰 뿐이다. 경찰이 공표하는 범죄 통계에도 존속살인은 별도 항목으로 있지만, 비속살인은 동거 친족 항목에 뭉뚱그려져 집계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비속살인은 오히려 감형 요소였다. 2020년 확정판결이 난 아동학대치사 사건 15건 중 11건은 피의자가 징역 7년 이하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양부모의 학대로 입양 271일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2020년)을 계기로 2021년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비속살인의 형량도 무거워졌다. 같은 범죄라도 형법이 아닌 아동학대살해죄가 적용되면 존속살인처럼 가중처벌 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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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형법에 비속살인 조항을 신설해 존속살인과 형평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7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미성년자인 직계비속에 대한 살인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형량도 존속살인과 동일하게 맞췄다. 이 의원은 “비속살인죄 신설은 자녀 살해에 대한 온정적 여론을 바꾸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은 21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이수정 교수는 “자살을 마치 자기희생처럼 생각하고 누군가 대신해 한을 풀어줄 거라고 믿는데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녀 살해 역시 자식들에게 닥칠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으로 오판하는데, 자살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구에선 자녀를 별도 인격체로 인정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이 1명에 미치지 못하는 일본은 세계에서 살인사건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전체 살인사건 대비 친족살해 비율은 2010년 30.3%에서 2017년 55%로 늘었다(일본 경찰청). 2016년 카나가와현 연구에서는 169건의 살인사건 중 76건이 가족 ‘살해 후 자살’이었다. 이 중 41건이 자녀 살해였다.

일본에선 이를 ‘무리신주(むりしんじゅう)’라고 부르는데, 일본도 한국처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큰 가부장적 성향이 짙다. 닐 웹스데일 미국 애리조나대 가정폭력센터장은 “‘살해 후 자살’ 피의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을 실천하는 이타적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Familicidal hearts』).

반면 서구에서는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일이 드물다. 동반자살이란 개념이 따로 없고 그저 아동학대와 ‘자녀살해(filicide)’의 한 범주로 볼 뿐이다. 홍영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녀를 별도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에선 ‘자녀 살해 후 자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국도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