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컷칼럼

영화감독 박성광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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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개그맨 박성광이 메가폰을 잡은 첫 상업영화 ‘웅남이’가 지난 22일 개봉했다. 첫 주말을 보낸 26일까지의 누적관객수는 17만2372명. 흥행 성공이라 보기 어려운 수치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남긴 사회적 반향은 작지 않다. 지난 14일 언론배급시사회 이후 한 중견 영화평론가가 남긴 한줄 평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을까”에서 논란이 시작됐다. 개그맨이란 감독의 본업과 ‘여기’로 지칭한 영화계를 급이 다른 영역인 양 선을 긋고 도전 자체를 조롱하는 뉘앙스에 여론이 발끈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텃세와 무례” “희극인을 얕잡아 보는 풍토” “이런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영화계에 해로운 사람” 등 비판이 쏟아졌다. 출신 학교와 직업, 성별과 배경 등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직간접 경험하며 살아 온 대중들의 감정 이입과 분노를 촉발한 것이다.

첫 상업영화 연출작 ‘웅남이’ 개봉
“여기가 만만해?”서 드러난 편견
출신 따진 차별·배제는 사회 손실

 유행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알려진 박성광에게 ‘웅남이’는 네 번째 영화다. 2011년 ‘욕’을 시작으로 ‘슬프지 않아서 슬픈’(2017), ‘끈’(2020) 등 세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박성광으로선 대학(동아방송예술대 영화예술학과)에서 영화를 전공한 뒤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셈이지만 상업영화의 문턱은 높았다. 대부분의 제작사·투자사가 감독이 개그맨이면 곤란하다는 반응이었다. 심형래·이경규·서세원 등 개그맨들의 영화 연출 도전이 긍정적인 선례가 되지 못한 영향도 컸다. 어느 투자자는 그의 면전에서 “연출만 딴 사람한테 맡기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박성광이 쓴 시나리오는 끝내 거절당했지만, 그 과정에서 만난 제작사가 2021년 코미디 영화 ‘웅남이’ 연출을 제안하면서 그의 상업영화 데뷔가 이뤄졌다.

 개그맨이란 편견을 딛고 새로운 분야의 정상에 오른 대표적 사례는 뮤지컬 배우 정성화다. ‘영웅’의 안중근을 비롯해 ‘레미제라블’ ‘맨 오브 라만차’ ‘킹키부츠’ 등 대형 뮤지컬의 주인공을 도맡아 하는 뮤지컬계의 명실상부 톱스타다.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정성화는 성대모사로 인기를 끌었다.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DJ(2001∼2002) 이후 활동이 뜸했던 그를 뮤지컬 무대로 이끈 이는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 프로듀서인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다. 설 대표는 자신이 SBS 예술단장을 하던 시절 만난 정성화의 가창력과 연기력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2004년 뮤지컬 ‘아이 러브 유’를 제작하며 정성화를 캐스팅했을 때 주변에선 개그맨의 가벼운 이미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 선입견을 버리자. 재능 있는 배우로 세상이 인정할 날이 꼭 온다”며 밀어붙인 설 대표의 소신이 한국 뮤지컬 역사를 바꿔놨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에서 주요 조연으로 등장해 호평을 받은 개그우먼 김신영도 편견 없는 캐스팅의 성공 사례다. 김신영조차 “코미디언이 영화를? 다들 우습게 보겠지”란 생각을 먼저 했다는데, ‘행님아’ 시절부터 팬이었다는 박찬욱 감독은 그를 “불세출의 천재”라 꼽으며 전격 발탁했다. 해외로 눈을 넓히면 전설의 영화인 찰리 채플린도, ‘겟 아웃’ ‘놉’의 감독 조던 필도 코미디언 출신이다.

 박성광의 ‘웅남이’는 작품 완성도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많다. 식상한 유머 코드와 허술한 전개가 몰입을 방해한다. 지난 토요일 오전 박성광 감독과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최선을 다했지만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실력이 닿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군가의 인생영화가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박성광의 영화 연출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도전이 멈춘다 하더라도 그건 그가 개그맨 출신이어서가 아니어야 한다. 누구라도 편견에 밀려 기회를 잃게 된다면 이는 결국 사회적 손실이기 때문이다.

글 = 이지영 논설위원 그림 = 안은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