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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손자, 외투 벗어 비석 닦았다…5·18 묘지 소장마저 '울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손자 우원(27)씨가 3월 31일 광주광역시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앞서 5·18 민주화운동 유족과 피해자들을 만나 사죄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중 광주 민주화운동 피해자·유족들에게 사죄하고 묘역을 참배한 것은 전우원씨가 처음이다. 5·18 단체 회원들은 그의 진심 어린 사과에 눈물을 흘리며 따뜻하게 맞이했다.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조사를 마치고 석방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조사를 마치고 석방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죄송하고, 감사드린다”

전씨는 3월 28일 뉴욕에서 귀국했으나, 도착하자마자 인천공항에서 마약 투약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38시간 동안 경찰 조사를 받고 30일 석방된 그는 곧바로 광주를 찾았다. 하루 동안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5·18 단체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전씨는 31일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 1층 리셉션 홀에서 열린 ‘5·18 유족 및 피해자와 만남’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이날 행사에서 “광주 5·18 민주화운동 학살 주범은 할아버지다”며 “일찍 사죄의 말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사죄 기회를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의 손자인 전우원 씨가 31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유족 및 피해자와의 공개 만남' 시간을 갖고 사죄한 뒤 유족들에게 큰절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의 손자인 전우원 씨가 31일 광주광역시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유족 및 피해자와의 공개 만남' 시간을 갖고 사죄한 뒤 유족들에게 큰절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행사 막바지에 의자에서 일어난 전씨는 5·18 당시 가족을 잃은 ‘오월어머니’들에게 다가가 무릎 꿇고 큰절을 했다. 이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 오월어머니회 이명자 회원은 “할아버지 죄를 전씨가 다 떠안고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씨는 행사에 참석한 어머니들을 일일이 마주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자신의 외투로 김경철 열사 묘비를 닦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자신의 외투로 김경철 열사 묘비를 닦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5·18 묘지 소장 마저 ‘울컥’

행사를 마친 전씨는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헌화와 참배로 오월 영령의 넋을 기렸다. 전씨는 5·18 최초 사망자인 고(故) 김경철 열사, 12살 희생자인 고(故) 전재수군, 행방불명자와 무명 열사 묘역을 차례대로 참배했다. 한 곳도 빠짐없이 묘비 앞에 무릎을 꿇은 전씨는 묘비와 영정 사진을 자신의 검은색 코트로 닦아줬다.

유족과 시민 등은 전두환 후손이 묘비를 닦아내는 모습에 눈물을 보였다. 주요 참배객을 맞이하는 국립5·18민주묘지 김범태 관리소장마저 눈시울을 붉혔다. 김 소장은 “전두환의 장남도 아닌 차남의 아들, 어떻게 보면 (5·18과) 무관한 사람인데, 진정한 마음으로 사죄하고 참배를 하는 모습에 울컥했다”며 “수많은 참배객을 맞이하면서 눈시울을 붉힌 것은 처음”이라고 당시 심정을 설명했다.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작성한 방명록. 프리랜서 장정필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작성한 방명록. 프리랜서 장정필

‘환영’ 단어는 조심스러워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씨는 마포경찰서에서 석방된 전씨에게 “광주 행을 격하게 환영한다”고 했다. 그는 ‘전씨의 용감한 언행과 행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5·18 단체들은 ‘전씨를 환영한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한다는 것이다. 5·18 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처장은 “전씨가 어려운 발걸음을 한 것에 대한 격려와 따뜻한 맞이가 올바른 표현 같다”고 말했다.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조사를 마치고 석방된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광주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한 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조사를 마치고 석방된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광주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한 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5·18 진실규명의 단초 제공

전씨의 5·18 사죄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5·18 단체들은 전씨의 행보가 궁극적으로 ‘진실규명’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전씨의 용기에 5·18에 대한 고백과 증언을 하는 사람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이기봉 사무처장은 “전씨의 행보를 계기로 숨어 지내는 5·18 당사자들이 고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범태 소장은 “전씨 같은 또 다른 MZ 세대의 손자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최세창· 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 주역의 손자들이 분명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행보였다”고 전했다.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에서 전직 대통령 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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