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통령의 귀 잡고있는 자"…막강 권력 안보실장 수난사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던 모습.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던 모습. 사진 대통령실

대통령실 참모 중 장관급 대우를 받는 직위는 단 두 자리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근 교체 논란이 벌어진 국가안보실장이다. 각각 대통령의 내치와 외치를 보좌하는 최고위급 참모다. 정치권에선 통상 비서실장을 ‘권력의 2인자’로 불러왔지만, 북핵 위협이 고조되며 안보실장의 중요성도 그 못지않다는 평가가 많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안보·정보의 사령탑”이라며 “최상위 비밀을 접하는 만큼 절대 배신하지 않는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아왔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사의를 표명한 김성한 전 안보실장도 윤 대통령의 대광초 동창으로 50년 지기다. 대선 기간엔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과외 교사로 불렸다. 윤 대통령이 당선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할 때 사용한 휴대폰도 김 전 실장의 것이었다. 그래서 김 전 실장의 갑작스러운 사의는 대통령실 내에서도 ‘깜짝 뉴스’에 가까웠다.

지난 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에선 국방부 장관 출신인 김장수·김관진 전 장관이 차례로 안보실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선 대선 기간 외교·안보와 대북 정책 공약을 총괄했던 정의용·서훈 전 실장이 각각 전·후반기 국가안보실을 이끌었다. 모두 대통령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들이었다.

2017년 5월 14일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 소집해 회의장에 들어서던 모습. 문 전 대통령의 뒤로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청와대

2017년 5월 14일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 소집해 회의장에 들어서던 모습. 문 전 대통령의 뒤로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불편한 동거’가 거론되기도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뒤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 임명 전 열흘간 박근혜 정부의 인사였던 김 전 실장의 보고를 받았다. 북한 도발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함께 참여했다. 전직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김 전 인사를 적폐청산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느냐”며 “그럼에도 함께할 수밖에 없었던 건 국가안보실장은 단 한 순간도 비워둬선 안 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물러난 뒤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옥고를 치렀다.

국가안보실장 관련 직제는 대통령제를 공유하는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or)’에서 따왔다고 한다. 공산 진영과의 데탕트(화해)를 성사시킨 헨리 키신저도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실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는 미국보다 한국의 국가안보실장이 훨씬 더 크다고 말한다.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같은 대통령제라도 미국보다 한국 대통령에 권력이 훨씬 집중돼있다”며 “그만큼 국가안보실장의 권한도 더 막강하다”고 말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과의 거리가 곧 권력의 크기”라며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단 측면에서 국가안보실장의 영향력은 다른 외교·안보 부처 장관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월북몰이를 한 혐의를 받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서 전 원장은 당시 구속됐고 재판을 받고있다. 뉴시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월북몰이를 한 혐의를 받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서 전 원장은 당시 구속됐고 재판을 받고있다. 뉴시스

권력과의 거리가 가까웠던 만큼, 역대 국가안보실장들은 수난을 겪기 일쑤였다. 김장수·김관진 전 안보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보고 시각과 횟수 등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모두 무죄를 받았지만 4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다. 정의용·서훈 전 안보실장은 탈북어민 강제북송과 서해 피살공무원 은폐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안보실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외교·국방·통일·정보를 아우르는 조율에 있다”며 “하지만 역대 안보실장은 조율보단 통제를 선호했고, 결국 권력이 쏠리며 부작용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