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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마비 이긴뒤 '슈퍼 다시마' 만든 남자…또다른 특명 맡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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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1992년 백령도에서 길이 6m 슈퍼다시마 배양에 성공했다. 사진 장태헌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1992년 백령도에서 길이 6m 슈퍼다시마 배양에 성공했다. 사진 장태헌

“다시마가 원래 3m 정도인데 다들 충격이었지…”
그는 굳은살 박인 손을 비비면서 멋쩍어했다.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1992년 백령도에서 길이 6m에 폭 60cm. 평균(3m)보다 2배 이상 긴 초대형 다시마 배양에 성공했다. 어업지도사들은 줄자로 한 번에 길이를 잴 수 없었던 이 다시마에 ‘슈퍼 다시마’란 이름을 붙였다. 30여년이 지나 슈퍼 다시마는 전국에 유통되는 백령도의 효자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장씨는 이제 국내 최고의 다시마 양식 기술자로 통한다.

장씨가 처음부터 다시마와 가까웠던 건 아니었다. 백령도에서 부모를 도와 어로작업을 했지만, 시선은 늘 육지로 향해있었다. 고교 졸업 후 서울에 터를 잡고 밴드 활동을 했다. 전국을 오가며 끼를 드러내던 삶은 서른살쯤 불의의 사고로 뒤바뀌었다. 잠시 고향에 돌아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는 병상에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면 섬과 어민을 위해 살겠다”고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간절함이 통한 걸까. 어느 순간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고 차차 몸을 가눌 수 있게 됐다. 반년 만에 퇴원한 그의 눈에 어업인 후계자 지원 사업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잠수는 자신 있던 그였다. 전국바다를 누비며 어업 기술을 배웠다. 수년간 바다를 연구하다 보니 눈이 뜨였다. 남북 접경지역인 백령도는 어로 구역이 제한적이었다. 어민의 유일한 수산소득원은 안보 상황에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었다. “잡는 어업이 아닌 기르는 어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1989년 국립수산진흥원 인천지원(현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연구소)에 요청해 다시마 양식을 시작했다.

‘기르는 어업’ 필요에 시작한 다시마 양식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직접 백령도 바다에 뛰어들어 수온 등을 연구한 덕분에 슈퍼 다시마 배양에 성공했다고 했다. 사진 장태헌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직접 백령도 바다에 뛰어들어 수온 등을 연구한 덕분에 슈퍼 다시마 배양에 성공했다고 했다. 사진 장태헌

“사업이 되겠느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양식 시작 2년 뒤 대형 다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심 5~15m에서 자라는 다시마는 수온이 18℃를 넘으면 이파리 끝부터 녹아내리는 ‘끝녹음’ 현상이 일어나, 6개월 이상 배양하기 어려웠다. 3m 정도 자라면 채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해 냉수대 해역에 속한 백령도는 10개월 이상 수온이 4℃~22℃(연 평균수온12.5 ℃) 선에서 오갔고 영양염(營養鹽) 농도도 높았다. 다시마 생장에 적합했다. 그렇게 자신의 키(170㎝)를 훌쩍 뛰어넘는 다시마를 만나던 날. 장씨는 ‘수년간의 연구가 빛을 발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직접 백령도 바다에 뛰어들어 수온 등을 연구한 덕분에 슈퍼 다시마 배양에 성공했다고 했다. 사진 장태헌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은 직접 백령도 바다에 뛰어들어 수온 등을 연구한 덕분에 슈퍼 다시마 배양에 성공했다고 했다. 사진 장태헌

빛나는 날만 있지 않았다. 1996년 가을 잠수복을 입지 않고 해수 취수구를 점검하던 동생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2000년엔 다시마 양식 시설이 태풍에 산산이 조각났다. 하지만 장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태풍에 견딜 수 있는 양식시설을 고안했다. 부잣줄에 회전 고리를 설치해 부자가 스스로 회전하도록 했고 줄을 늘여 수심을 낮춰서 다시마 손상을 최소화했다. 결국 슈퍼 다시마의 우량 씨앗 잉태를 끌어냈고 전남 완도, 진도 등으로 다시마 포자를 판매할 길을 열었다. 다시마 포자가 백령도 전 해안에 뿌리내리면서 전복 등 다시마를 좋아하는 해양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도 만들어졌다.

동해안 다시마 부활 맡았다

다시마 채묘는 성숙된 모조를 말린 뒤 멸균해수에 넣어 포자가 방출되게 한다. 이후 채묘틀을 수조에 넣어 포자를 붙이고 일정기간동안 육상수조에 보관했다가 바다에 가이식한다. 가이식이 끝나면 채묘틀을 이용해 본양성줄에 이식해 본격적인 양식을 시작한다. 사진 장태헌

다시마 채묘는 성숙된 모조를 말린 뒤 멸균해수에 넣어 포자가 방출되게 한다. 이후 채묘틀을 수조에 넣어 포자를 붙이고 일정기간동안 육상수조에 보관했다가 바다에 가이식한다. 가이식이 끝나면 채묘틀을 이용해 본양성줄에 이식해 본격적인 양식을 시작한다. 사진 장태헌

장씨는 최근 인천시 수산기술지원센터와 함께 ‘용다시마 현장적용 기술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멸종위기에 놓인 용다시마 포자를 백령도 바다에 이식해 자생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다. 주로 동해안에 서식하는 용다시마는 후코이단(Fucoidan) 등 유용한 성분을 머금은 우수품종이지만 지구온난화 등으로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수산당국은 장씨라면 용다시마의 명맥을 잇게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수산기술지원센터 관계자는 “백령도에서 용다시마 양식에 성공한다면 다시마 연구에 이정표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태헌씨는 서해5도 어업인연합회장을 맡으면서 서해5도 평화와 야간조업 허용 등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지난 29일 중앙일보와 만나 슈퍼 다시마의 산업화와 명품화 실현이 목표라고 했다. 사진 장태헌

장태헌씨는 서해5도 어업인연합회장을 맡으면서 서해5도 평화와 야간조업 허용 등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지난 29일 중앙일보와 만나 슈퍼 다시마의 산업화와 명품화 실현이 목표라고 했다. 사진 장태헌

하지만 장씨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백령도 다시마 양식을 이끌어 갈 어업인이 마땅치 않아서다.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슈퍼 다시마를 지역 대표 산업으로 만들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는데…. 정부가 어업인 양성에 관심이 더 갖고 명맥이 끊기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1일 12번째 수산인의 날을 맞은 ‘다시마 아빠’의 간절한 소망이다.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이 자신이 채취한 미역을 들고 있다. 사진 장태헌

장태헌(70) 백령도 선주협회장이 자신이 채취한 미역을 들고 있다. 사진 장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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