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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런 밥상에 MZ세대 ‘좋아요’…루틴 만드는 ‘매일의 힘’ 통한 듯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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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호 18면

‘식사 일기’ 쓴 백수부부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를 쓴 저자 윤혜자씨와 남편 편성준씨. 식사준비는 아내, 설거지는 남편의 몫이라고 한다. 최영재 기자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를 쓴 저자 윤혜자씨와 남편 편성준씨. 식사준비는 아내, 설거지는 남편의 몫이라고 한다. 최영재 기자

기자·출판기획자였던 윤혜자(53)씨와 광고 카피라이터였던 편성준(57)씨 부부를 처음 만난 건 2020년 11월이었다. 당시 부부는 둘 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편씨가 자신들의 자발적 백수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몽스북)를 펴냈다. ‘어차피 퇴사는 일정한 때가 되면 받아들여야 하는 정해진 미래이니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났을 때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 용기를 내서 미래를 낭비하지 말자’는 게 부부의 생각이었다. 이후 윤씨는 책 쓰기 워크숍을 열었고, 편씨는 두 권의 책을 더 썼다.  그리고 2년이 흘러, 이번에는 아내 윤씨가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몽스북)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성북동 소행성’이라고 이름 붙인 한옥에서 2021년 10월 1일부터 꼬박 1년간 부부가 먹었던 일상 식사 일기를 묶은 책이다.

“코로나 정국이 지속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였어요. ‘출근’이라는 걸 하지 말자 결심하고 선택한 생활이 힘든 건 아니었지만 하루하루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럼 뭐라도 써 보자 결심했죠. 매일 지루하지 않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생각해 보니 매일 먹는 밥상이 떠오르더라고요.”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사실 그즈음 부부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밥상을 본 남편이 “오늘 무슨 날이야?”라고 물었다. “아니, 왜?” “밥상에 고기반찬이 올라왔네.” 윤씨는 자신이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곰곰이 매일 먹었던 밥상을 복기해 봤죠. 우린 밑반찬이 많은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김치와 한 번 먹을 만큼의 반찬 한두 가지면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기껏 만들어 놓고 냉장고 속에 묵혀뒀다 버리는 반찬들이 떠올랐고 그때 생각했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먹는지 정확히 알고, 덜 먹고, 덜 버리고, 제철의 것을 단순하게 먹자! 이 식사일기는 바로 그런 저의 기록입니다.”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윤씨는 매일매일 그날 차린 밥상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소소한 일상을 기록했다.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 요리도구에 관한 이야기, 밥을 함께 먹은 지인, 음식과 관련한 추억 등등.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부부답게 ‘반찬이자 안주로 좋은’ 음식 팁도 많이 등장한다. 어느 날은 라면 한 그릇, 어느 날은 밥·국·김치·김이 전부. 남들은 사진 잘 나오라고 굳이 흰 테이블보를 쓰지만 윤씨의 사진들은 실제 사용하는 나무 식탁의 어두운 색깔까지 그대로 드러난 소박한 모습이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요즘처럼 ‘인스타그래머블한(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예쁘고 세련된 감성의 사진이 넘쳐날 때 이렇게 촌스러운 밥상 사진을 올릴 생각을 하다니 정말 용감하다고.(웃음)”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그런데 의외로 이 촌스러운 밥상이 MZ세대의 호감을 샀다. “좋아요” 숫자가 점차 늘었고, 남편 책을 냈던 출판사 대표로부터 책으로 엮자는 제안도 받았다. 윤씨는 “‘매일의 힘’이 통한 것 같다”고 했다. 최근 1~2년 동안 MZ세대에서 유행한 신조어들에는 ‘미라클 모닝’ ‘루틴’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기 위한 루틴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솔직히 매일 기록하는 일이 쉽진 않았죠. 피곤해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일기를 다음 날로 미루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거른 날은 없어요. 어떤 날은 정말 쓸 말이 없어서 ‘6월에 꼭 드세요, 완두콩’ 한 줄만 쓴 적도 있죠.(웃음)”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정말 쓰기 힘들어도 그냥 넘기지 말고 한 줄이라도 쓰기 위해 윤씨는 일기를 쓰는 시점을 아침으로 옮겼다. 사진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쓸지 키워드를 미리 생각해 두고, 필요한 정보까지 찾아둔 다음,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대에서 휴대폰으로 일기를 썼다.

“남편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글을 쓰고, 등교시킬 아이도 없으니 오전 10시 아침밥 시작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내 시간인 거죠.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일기를 쓰는 데 집중했어요. 뭔가를 지속적으로 하려면 루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시간으로 제일 좋은 건 아침이더라고요.”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윤씨는 책 마지막 부분에 ‘일기쓰기는 나에게 뜻밖의 성장을 선물했다’고 적었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게 됐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생활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고, 음식을 같이 먹는 사람이 내 밥상의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책에 삽입된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풍경. 제철 식재료로 만든 소박함이 특징이다. [사진 윤혜자]

윤씨의 식사일기 중 ‘파는 어른의 음식’이라는 대목이 있다. 미끈거리는 게 싫어서 어려서부터 파를 안 먹었다는 윤씨는 식사일기를 쓰면서 곰탕이나 라면처럼 요리를 할 때 파가 있어야 제 맛을 내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먹을 때는 파를 골라내더라도 일단 요리할 때 파를 넣는 것을 피하지 않게 됐죠. 개인의 일상이든, 더불어 사는 일상이든, 삶에는 각자의 역할과 취향을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파’를 통해 터득한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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