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머릿니·지렁이도 역사 속에 꿈틀꿈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33호 20면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
사이먼 반즈 지음
오수원 옮김
현대지성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라는 제목을 들었을 땐, 역사 속에 등장하는 동물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다. 이를테면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든 한니발의 코끼리, 미·중 외교의 양념 구실을 한 판다 따위. 그러나 이 책은 훨씬 더 시시콜콜한 정보를 담고 있다.

코끼리 코는 350㎏을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세면서도, 땅콩 껍데기를 벗길 정도로 섬세하다. 사냥개 그레이하운드보다 4배는 더 냄새를 잘 맡는다. 가축이라고 부르긴 힘들지만, 6000년 전 인더스 계곡에서 처음 인간을 도와 무거운 물건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마의 정치인 플리니우스는 코끼리를 두고 “인간에게도 드물게 나타나는 정직, 분별, 정의 같은 자질뿐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을 경외하는 자질까지 보인다”고 평했다. 코끼리는 기억력이 좋아 23년 만에 상봉해서 서로를 알아보기도 한다. 소·말·개·닭 등 익숙한 동물뿐만 아니라 따개비·굴·머릿니·지렁이 등 ‘아니 이런 것까지’라는 생각이 드는 동물까지 속속들이 파헤친다.

책의 원제는 ‘History of the World in 100 Animals’. 저자 사이먼 반즈는 100가지 동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곧 세계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동물 환경 근본주의자’다. 영국 ‘더타임스’ 기자 출신으로 코뿔소 보호단체의 후원자이자 환경 보호단체의 위원이기도 하다.

글솜씨도 좋다. 저자는 넓은 들판을 누비며 최대 10년을 살던 닭을 1㎡에 20마리씩 욱여넣어 6주 만에 도축하는 걸 두고 ‘추수하기 전에 화학물질을 잔뜩 주어 기르는 식물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지만 겸손하고 충직해서 인간의 혐오와 사랑을 동시에 받는 당나귀를 ‘하찮지만 유용한 노동자’에 비유했다.

100가지 동물에 인간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을 가장 위험한 맹수로 본다. 19세기 초 북아메리카에 6000만 마리의 버팔로가 있었지만, 20세기 초에는 300마리뿐이었다. 도도새와 양쯔강돌고래는 멸종됐다. 100가지 동물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멸종 동물은 더 많다.

100번째 소개한 동물은 기후 위기의 상징이 된 북극곰이다. “북극곰은 어디에도 없는 섬을 찾아 계속 헤엄치고 있다. 우리 모두 그곳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가 끝날 수도 있다는 경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