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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네의 생물 분류법보다 『본초강목』이 먼저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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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호 20면

과학의 반쪽사

과학의 반쪽사

과학의 반쪽사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블랙피쉬

흔히 자연과학의 ‘저작권’은 유럽·북미에 있고, 그 밖의 세계는 서양에 빚진 것 같은 묘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예로 천문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정밀 관측의 브라헤, 행성 운동의 케플러, 망원경으로 천체를 살핀 갈릴레오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영국 워릭대 과학기술사 교수인 지은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럽과 북미의 바깥에서 이뤄진 숱한 연구도 과학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강조한다.

서아프리카 말리의 중세 무역도시 팀북투를 보자. 14~15세기 이슬람 건축물이 지금도 남아있는 이곳에선 18세기 초에 아랍어로 작성된 천문학 원고가 발견됐다. 교역과 메카 순례 등을 통해 수백㎞ 떨어진 지역으로 지식과 아이디어가 오가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얻은 흔적이다.

18세기 중국, 일본, 네덜란드 학자들의 교류를 묘사한 그림. 탁자 위에 해부학 교과서와 박물학 표본이 놓여 있다. [사진 블랙피쉬]

18세기 중국, 일본, 네덜란드 학자들의 교류를 묘사한 그림. 탁자 위에 해부학 교과서와 박물학 표본이 놓여 있다. [사진 블랙피쉬]

어디 그뿐인가. 무슬림 세계의 중심이던 오스만 제국은 1577년 수도 이스탄불에 거대한 천문대를 세웠으며, 천문학자들의 활동을 세밀화로 기록했다. 인도 갠지스 강가의 바라나시라고 하면 화장터, 그리고 신성한 강물에 몸을 담그려는 힌두교도로 북적거리는 광경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언덕에는 1737년 지은 잔타르 만타르 천문대가 강을 굽어보고 있다. 과학은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웅변하는 사례다.

생물학을 보자. 우리는 18세기 스웨덴 식물학자 칼 린네가 생물의 계통과 종속을 나누는 생물 분류학의 틀을 닦았다고 배웠다. 하지만 지은이는 중국에선 훨씬 앞서 이런 시도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8세기 당나라 문인 육우는 차를 전문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 『다경(茶經)』을 지었다. 16세기 명나라 의사 이시진은 동·식물과 광물로 이뤄진 1892종의 약재를 상세하게 다룬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펴냈다.

18세기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한 청나라에선 이시진의 연구에 더해 최신 내용을 덧붙이는 과학 출간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중국의 자연사 서적은 교역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박물학자 르 셰롱 댕카르빌은 1742년 ‘중국의 약용식물과 몇몇 동물, 곤충의 그림이 담긴 진정한 자연사 서적’을 발견하게 된 경위를 담은 편지를 썼는데, 그 책은 다름 아닌 『본초강목』이었다. 지은이는 이런 사례가 유럽과 중국에서 자연사 분야가 밀접하게 상호 반영하며 발전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시진은 린네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는 지은이의 평가가 울림을 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외과의사 칼 페레트 툰베리는 1775년 일본에 도착해 제약을 뚫고 현지 식물을 수집했다. 이듬해 600개가 넘는 표본과 서적을 들고 유럽에 돌아온 그는 1784년 『일본의 식물상』이라는 책을 내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그는 과거 린네가 맡았던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의료식물학 교수가 됐다.

툰베리는 일본에서 만난 식물에 라틴어 분류체계를 적용했을 뿐 아니라, 일본 이름도 함께 소개했다. 그는 소철에 ‘시카스 레볼루타’라는 라틴어 학명을 붙이는 한편, ‘소테츠’라는 일본 이름도 소개했다. 지은이는 툰베리와 소철의 일화는 18세기 유럽 과학이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이뤄진 지식교환에 얼마나 깊숙하게 의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17~18세기는 흔히 계몽주의의 시대로 불린다. 하지만 지은이는 세계 교역을 이루며 이익과 영역 확장을 추구한 제국주의의 시대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15세기 이후 외부 세계와 폭넓게 교류한 유럽인이 자연사 연구에서도 혁명을 이룬 것은 필요에 의해서였다. 미주에선 옥수수를, 인도에선 향신료를, 동아프리카에선 과일을 수입하면서 자연사 연구가 바로 돈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17세기 영국의 아이작 뉴턴의 업적도 교역과 식민지 시대가 낳은 개가다. 뉴턴은 저서 『프린키피아』에 그 유명한 만유인력 이론을 담았다. 흔히 역병을 피해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 땅에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졌지만, 지은이는 식민지 시대가 낳은 데이터가 바탕이 됐다고 반박한다. 장 리셰르라는 프랑스 천문학자가 남아메리카의 카이엔과 아프리카의 노예무역 중심지 고레 섬 등에서 네덜란드 수학자 크리스티안 아위헌스가 만든 진자시계로 실험한 데이터다. 뉴턴이 계산한 결과 중력은 적도 부근에서 훨씬 약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력과 지구의 모양 등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었다.

실제로 뉴턴은 중국에서 돌아온 동인도회사 간부들이 전해준 조수간만에 대한 데이터나 북미 메릴랜드주 노예 주인들이 관찰한 혜성 자료를 수집했다. 또 런던의 왕립학회와 왕립 조폐국 등을 통해서도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천문학 서적보다 여행 서적을 두 배나 더 많이 보유했던 뉴턴은 현장 관찰보다 이처럼 전 세계에서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적인 힘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뿌리부터 바꿨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과학 연구결과는 시대의 산물이지 지역이나 문화권의 우열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원제 Horizons.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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