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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부상 딛고 온 힘 다해 점프한 이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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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세터 이원정. 사진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 세터 이원정. 사진 한국배구연맹

복덩이가 통산 세 번째 우승을 향한 길을 스스로 만들었다. 흥국생명 세터 이원정(23)이 팀 승리에 기여했다.

흥국생명은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0(25-18, 25-15, 25-21)으로 이겼다.

프로 6년차 세터 이원정은 올 시즌 도중 GS칼텍스에서 흥국생명으로 트레이드됐다. 권순찬 감독과 팀은 우승을 위해 세터 보강을 선택했고, 이원정을 점찍었다. 그 선택은 맞아떨어졌다. 이원정은 김연경의 입맛에 맞는 토스를 올려주며 흥국생명의 막판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결국 흥국생명은 현대건설을 제치고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부상이 그를 덮쳤다. 햄스트링을 다쳐 지난 11일 KGC인삼공사전 이후 휴식을 취했다. 햄스트링 부상 특성상 휴식과 보강 운동 외엔 방법이 없었다. 보름 이상을 쉬고 나서야 챔프전 코트에 섰다.

흥국생명 세터 이원정. 사진 한국배구연맹

흥국생명 세터 이원정. 사진 한국배구연맹

이원정은 1차전에서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아픈 다리로도 계속해서 점프해 유효블로킹 10개를 잡아냈다. 2차전에선 경기 운영도 한결 안정적이었다. 3세트 초반 패스가 흔들려 교체되긴 했지만, 막판엔 옐레나와 김연경에게 토스를 올려줬다. 옐레나는 이날 59.38%, 김연경은 58.06%의 공격성공률을 찍었다.

경기 뒤 만난 이원정은 "1차전보다는 조금 나은 거 같은데 만족하진 못했다.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 많이 쉬고, 챔프전 준비했다. 운동하긴 했지만 쉬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몸이 잘 안 올라오는 거 같아서 속상했다. 오늘도 만족스럽진 않다"고 했다.

3세트 도중 교체된 뒤 재투입된 이원정은 20-21에서 5연속 득점을 도와 경기를 매조졌다. 그는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지금은 솔직히 말하면 발 상태가 안 좋다. 4세트 가면 힘들거 같았다. 김천까지 가야 하니까 집중해서 끝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햄스트링은 재발 위험이 높은 부위다. 하지만 이원정은 온 힘을 다해 뛰어 블로킹에 가담했다. 1차전에선 유효블로킹 10개를 잡았고, 2차전은 블로킹 득점 2개와 유효블로킹 7개를 올렸다. 이원정은 "세트가 거듭될 수록 많이 뛰려고 하면 힘든 게 사실이다. 버겁지만, 챔프전 우승만 생각한다. 3차전에 끝내고 쉬고 싶다"고 했다.

사실 이원정이 부상으로 고통받은 게 처음은 아니다. 2017~18시즌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입단한 이원정은 김종민 감독의 기대를 받았다. 베테랑 세터 이효희의 뒤를 이을 선수로 점찍었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차질이 생겼고, 결국 3시즌 동안 백업 역할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GS칼텍스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백업으로 자주 출전했으나 왼손에 물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고, 막바지 다시 도지는 바람에 좀처럼 주전으로 도약하지 못했다.

이번 챔프전을 앞두고도 부상을 입은 이원정은 "맨날 부상이 있으니까 속상하더라. '할 수 있디'는 생각으로 하려고 했지만, 다리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많이 속상했다. 그래도 치료해서 뛰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원정은 다섯 시즌을 치르는 동안 도로공사와 GS칼텍스에서 한 차례씩 우승했다. 이번까지 우승하면 세 팀에서 세 번 정상을 밟는다. 다만 주축 선수로 차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원정은 "확실히 (지난 두 번과는)압박감이 다르다. 도공 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고, GS 때는 약간 생각했다. 이번에는 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잘 하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세터 이원정과 주포 김연경은 많은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이원정은 "칭찬도, 쓴소리도 많이 한다. 언니가 좋은 토스일 땐 때리기도 전에 '나이스 토스'라고 한다"고 웃으며 "실수할 때는 천천히 이야기한다. 챔프전 때는 쓴소리보다는 긴장하는 게 보여서 그런지 저를 다독여줘서 고맙다. 도움이 많이 되는 거 같다"고 했다.

아본단자 감독은 "경험보다는 한 달 간 코트를 못 밟아서 100% 경기력을 보이기 어려울 것 같아 차분하게 하라고 했다. 그러면 스스로 자신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고, 그러면 리듬을 찾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경기를 할 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전을 지시하는 흥국생명 아본단자 감독(왼쪽)과 세터 이원정. 가운데는 김태희 통역. 사진 한국배구연맹

작전을 지시하는 흥국생명 아본단자 감독(왼쪽)과 세터 이원정. 가운데는 김태희 통역. 사진 한국배구연맹

이원정은 "감독님은 주문이 많고,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옐레나와 연경 언니는 높고 빠르게 때리는 걸 좋아하고, (김)미연 언니는 스피드한 걸 선호해서 거기에 따라가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시즌 도중 트레이드, 그리고 새롭게 얻은 기회와 우승컵 도전. 이원정에게 2022~23시즌은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순간이다. 이원정은 "기억에 남는 시즌이 될 듯하다. 흥국에 와서 우승할 기회를 잡은 건 행운이다. '네가 운이 좋으니까 할 수 있는 거'란 말도 있다. 난 우승운이 좀 있다"며 3차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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