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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만, 120만 명 "꽃보다 사람 많다" … 축제도 보복 소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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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3호 02면

달아오르는 지역 축제

지난 3월 28일 동틀 무렵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공원 벚꽃터널을 지나는 시민들. 코로나19로 4년 만에 열리는 진해 군항제는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이어진다.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28일 동틀 무렵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공원 벚꽃터널을 지나는 시민들. 코로나19로 4년 만에 열리는 진해 군항제는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이어진다. 김홍준 기자

부산에서 온 이 가족처럼 진해 군항제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난달 28일 오전 6시 15분. 부산 가족은 동틀 무렵 경화역에 도착했다. “벚꽃 구경하러 왔지, 사람 구경하러 온 게 아니다”라며 이들은 철로를 따라 벚꽃 터널로 들어갔다.

이날 오전 5시 2분. 진모(56)씨는 서울역에서 첫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일찌감치 여좌천 벚꽃을 감상하고 아들과 함께 장복산(593m) 정상에 올랐다. 진씨는 “벚꽃에 묻혀 있다가 산에서 그 벚꽃 숲을 굽어보는 맛도 일품”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8일 오후 장복산(593m)에서 바라본 진해 군항제 명소인 여좌천 벚꽃길. 오른쪽 아래로 여좌천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28일 오후 장복산(593m)에서 바라본 진해 군항제 명소인 여좌천 벚꽃길. 오른쪽 아래로 여좌천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올해 진해 군항제는 유난히 붐빈다. “벚꽃보다 사람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더불어 핀 개나리가 안타깝다”는 말도 나올 정도로 벚꽃 사랑은 인파로 인한,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를 강장제처럼 잠재운다.

부산의 가족과 진씨, 그리고 대전에서 온 백현수(43)씨도, 심지어 군항제가 열리는 창원에 사는 김도원(23)씨도 “진해 군항제는 난생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난생처음’ 오는 사람들로 대한민국 축제가 달아올랐다. 코로나19 방역이 풀렸고, 날씨도 풀렸다. 진해 군항제 관계자는 “역대 최다인 450만 명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코로나로 꽉 막혔던 체증 사라져”

지난달 26일 진해 군항제가 한창인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 공원에서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들. 송봉근 기자

지난달 26일 진해 군항제가 한창인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역 공원에서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들. 송봉근 기자

올해 ‘인파만파(人波萬波) 축제’의 시작은 화천 산천어축제(1월 7일~29일)가 끊었다. 축제 기간 겨울 폭우로 운영에 차질을 빚었지만, 131만 명이나 축제를 즐겼다. ‘물 반 고기 반’을 넘어 ‘고기 반 사람 반’이라는 말이 나왔다.

구례 산수유꽃축제(3월 11일~19일), 광양 매화축제(3월 10일~19일)는 각각 37만 명, 120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 광양 매화축제에 다녀왔다는 박모(57·경기도 고양)씨는 “왜 축제, 축제라고 부르는지 이번에 처음 가보고 체감했다”라며 “코로나19로 꽉 막혔던 체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축제도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를 보인다. 물건에 적용되던, 코로나19로 억눌린 소비 심리가 여행에도 분출되는 것이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회복된 일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 것인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여행’이고 축제는 그 여행을 할 수 있는 이벤트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7일 오전 전남 광양시 매화마을에 만개한 매화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3월 17일 오전 전남 광양시 매화마을에 만개한 매화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연합뉴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지역사회건강조사에 따르면, 중등도(호흡이 약간 가쁜 빨리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이상 신체활동 실천율은 2019년 24.7%, 2020년 19.8%, 2021년 19.7%로 줄었다. 신체활동 저하는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우울감 경험률은 같은 기간 5.5%, 5.7%, 6.7%로 증가했다.

이 원장은 이런 우울감을 덜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행을 꼽았다. 서울관광재단의 ‘코로나19 전후 심리상태와 여가·관광행태 변화 연구’ 결과, 우울을 느끼는 응답자의 72%는 스트레스 해결 방안으로 여행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 원장은 “연구를 통해 자연에서 유대감이 높아지면 심장박동 변이도 상승한다”며 “이는 여행이라는 순수 체험을 통해 행복감이 지속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방역이 풀리면서 축제에 참여하는 인원이 늘어난 건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지난달 18일 구례 산수유꽃축제가 열린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서 봄을 만끽하고 있는 시민들. [뉴시스]

지난달 18일 구례 산수유꽃축제가 열린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서 봄을 만끽하고 있는 시민들. [뉴시스]

“글쎄요, 이 2만원짜리 해물파전까지 합쳐 5만원쯤 썼네요.”

김해에서 온 강해정(50)씨도 ‘난생처음’ 군항제에 왔단다. 여좌천 주변의 음식값이 비싸다는 평을 알고도 ‘분위기에 휩쓸려’ 먹게 됐단다. 강씨 같은 외래 방문객의 경우 1인당 6만원 넘게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열린 진해 군항제에는 410만여 명이 찾았다. 선종갑 경남대 교수팀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경제유발효과는 2345억원. 1인당 7개 항목(교통비, 숙박비, 식·음료비, 유흥비, 쇼핑비, 기타)에서 지역주민은 3만 7500원, 외래 방문객은 6만3800원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올해 예상 방문객 수 450만 명에 단순 대입할 경우 약 2600억원의 경제유발효과가 창출된다. 올해 군항제 예산 14억7200만원의 177배에 이른다.

지난 3월 27일 평일 한밤에도 불구하고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에는 진해 군항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27일 평일 한밤에도 불구하고 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에는 진해 군항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김홍준 기자

군항제 올해 경제효과 2600억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응봉산. 김수진(23)씨는 친구 3명과 개나리축제에 빠졌다. 그는 “서로 녹색이나 초록색 옷으로 ‘깔맞춤’을 하고 오기로 했다”며 웃었다. 이들을 쳐다보는 50대 후반 여성 일행도 덩달아 웃었다.

50대가 축제 참가자들의 주축이지만 20·30세대의 참여가 눈에 띈다. 최근 여러 축제를 다녀온 임운석 여행작가는 “지난겨울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나 광양 매화축제, 구례 산수유꽃축제의 경우 코로나19 이전보다 젊은 세대가 많이 찾아왔다”며 “방문객이 가족 위주에서 끼리끼리 친구까지로 폭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황정희 여행작가는 “20·30세대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축제 사진을 찍지만, 값이 좀 나가는 사진기를 이용하는 젊은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창원의 김도원씨도 사진기를 샀다. 그는 지난달 27일 새벽에 진해 여좌천에 들렀다가 밤에 다시 찾아왔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퍼진다. 축제는 그의 사진에 고스란히 실리고, 해시태그(#)가 붙은 채 바이럴(viral·입소문, 마케팅 기법의 일종) 된다.

임 작가는 “축제 포토존이나 먹을거리도 20·30세대에 맞추는 듯한 모양새”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2022년 국민문화예술활동 조사에 따르면. 20대, 30대의 영화· 공연 등 관람률이 연령대에서 각각 1위(4.7%), 2위(4%)다. 이런 점을 반영해 최근 지역 축제와 문화예술의 결합은 20·30세대를 겨냥한 시도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내수 활성화를 위해 총 100만 명에 1인당 숙박비 3만원씩을, 19만 명에 휴가비 10만원씩을 지원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지역축제도 테마별로 확대하는 한편, 지역축제와 연계해 소비쿠폰을 지급하고 공공기관 시설 무료 개방도 늘리기로 했다.

개나리가 만발한 서울 성동구 응봉산 옆으로 전철이 지나가고 있다. 권혁재 기자

개나리가 만발한 서울 성동구 응봉산 옆으로 전철이 지나가고 있다. 권혁재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추린 올해 우리나라 축제는 1136개. 2014년 555개에서 두 배 이상 늘었다. 축제가 양적으로 늘었지만,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신겸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원장은 “축제도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방문객 숫자와 경제적 수치로 평가받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작지만 독특한 콘텐트와 내실 있는 운영으로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축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꽃보다 사람.’ 이 말의 시작은 ‘꽃보다 사람이 중요하다’였는데, 오늘의 축제 열기는 ‘꽃보다 사람이 많다’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 벚꽃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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