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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전기·가스요금 인상 잠정보류…전문가 "요금 현실화 시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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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잠정 보류된 31일 서울 시내 가스 계량기 모습.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 여부를 추후 결정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잠정 보류된 31일 서울 시내 가스 계량기 모습. 국민의힘과 정부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 여부를 추후 결정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이 올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잠정 보류했다. 고물가로 민생이 어려워진 만큼 추가로 의견을 수렴한 뒤 결정하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는 상황에서 가격 현실화가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1일 열린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전기·가스요금 조정 방안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서민 생활 안정, 국제 에너지 가격 추이, 물가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 공기업 재무 상황 등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요금 조정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산업부 측은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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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당정은 2분기 요금이 적용되는 4월 1일 이전까지 인상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잠정 보류 판단을 내린 건 요금 인상 시 급격한 민심 악화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당정은 지난 1월에도 급격히 오른 난방비 문제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당정은 ‘요금 동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누적적자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단 점에선 인식을 같이했다”며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기·가스요금은 당분간 현행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앞서 산업부는 1분기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시)당 13.1원 인상하는 한편, 가스요금은 동절기 난방비 부담 등을 이유로 동결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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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는 2분기 시작 이후에 전기요금을 조정해도 규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기후환경요금 ▶기준연료비 등으로 구성되는데, 조정 대상인 기준연료비는 반드시 분기마다 결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1분기와 같은 ㎾h당 5.0원으로 이날 확정됐다.

다만 언제 조정 방안이 정해질지는 불확실하다. 전문가 간담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다시 한번 요금 인상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2분기 내 요금 인상이 물 건너가거나, 조정하더라도 최소 폭 인상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당정은 에너지 공기업의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박 의장은 “요금 인상 시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공기업 구조조정 없이 요금만 인상하면 민심 이반 현상이 더 커질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만큼 요금 인상이 미뤄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지난해 32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1분기에만 5조원대 적자가 쌓일 것으로 전망된다. 가스공사 역시 지난해 말 기준 8조원대였던 미수금이 올 1분기 12조원대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정부는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선 올해 전기요금은 ㎾h당 51.6원, 가스요금은 MJ(메가줄)당 최대 10.4원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특히 2분기를 놓치면 요금 인상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2분기는 냉난방 수요가 크지 않아 인상에 따른 체감이 덜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냉방 수요가 몰리면서 가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전 국면까지 겹치면 큰 폭의 요금 조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2분기가 요금을 조정하기 가장 좋은 시기인데, 여기서 미뤄지면 한전과 가스공사는 더는 버틸 수 없게 된다”며 “국민에게 요금 인상과 에너지 절약 필요성을 설득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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