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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자란다" 박지원 냉소뒤 4년...이번엔 민주당이 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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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윤재갑 해양수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윤재갑 해양수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에서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대여(對與) 삭발 투쟁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수순에 들어가자, 민주당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반대에 이어 거부권 항의 차원에서 릴레이 삭발을 예고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31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내달 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긴급 현안질의를 한 뒤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 것”이라며 “규탄대회에선 신정훈 의원이 삭발을 한다”고 말했다. 농해수위 소속 신정훈 의원은 당내 민생우선실천단 쌀값정상화 태스크포스(TF)의 팀장을 맡고 있다.

민주당은 전날 삭발 투쟁의 첫 발을 뗐다. 국회 본청 앞 계단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를 열고 당 해양수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윤재갑 의원이 삭발식을 벌였다. 윤 의원은 31일 라디오에 출연해 “야당이 말로만 주장하니까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며 “뭔가 행동을 해야 되지 않겠냐는 판단으로 제가 삭발을 하겠다고 자청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삭발은 야당 인사들의 대여 투쟁 수단으로 종종 활용됐다. 삭발은 단식·장외 집회 등 다른 수단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드는 반면 시각적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삭발을 통해 투쟁의 목적을 쟁취한 경우는 드물었다. 1987년 첫 삭발 투쟁부터가 그렇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시 신민주공화당 소속이었던 박찬종 의원은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간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삭발했다. 하지만 양 후보는 단일화에 실패했고, 결국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삭발하는 박찬종 전 의원. 중앙포토

삭발하는 박찬종 전 의원. 중앙포토

1993년엔 민주당 소속 김영진 의원이 우리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며 다자간 무역 협정인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이뤄지고 있던 스위스 제네바 유럽공동체(EC) 공관 앞에서 삭발식을 치렀다. 하지만 끝내 그해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됐고, 우리 정부도 여기에 참여했다. 1997년 김성곤 당시 국민회의 의원이 국회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반대한다며 치른 삭발식도, 2004년 설훈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철회 등을 주장하면 치른 삭발·단식 투쟁도 끝내 그 뜻을 이루는 데에는 실패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2019년 9월 10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2019년 9월 10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최근 삭발 투쟁은 2019년이다. 그해 4월과 5월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박대출·김태흠·윤영석·이장우·성일종 의원 등이 여야 4당의 선거법·공수처법·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반발하며 삭발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선거법과 공수처법은 그해 12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이듬해 1월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2019년 9월에도 릴레이 삭발이 있었다. 9월 10일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해 삭발했고, 이틀 뒤 한국당 박인숙 의원과 김숙향 서울 동작갑 당협위원장이 삭발에 동참했다. 엿새뒤인 16일엔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분수 앞에서 “조 장관을 파면하라”며 사상 초유의 제1야당 대표의 삭발 투쟁 기록을 썼다. 이후 김문수·강효상·이주영·심재철·차명진·김석기·송석준·이만희·장석춘·최교일 등 야당 인사 여럿이 릴레이 삭발에 나섰고 그 중엔 김기현 현 국민의힘 대표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조 전 장관의 파면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19년 9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에 나선 송석준, 장석춘, 최교일, 이만희, 김석기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19년 9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며 삭발에 나선 송석준, 장석춘, 최교일, 이만희, 김석기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그저 정쟁을 위한, 존재감 확인을 위한 삭발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이재정 당시 대변인)고 냉소했다. 당시 대안정치연대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페이스북에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 쇼’는 첫째 의원식 사퇴, 둘째 삭발, 셋째 단식”이라며 “왜? 사퇴한 의원 없고, 머리는 자라고, 굶어죽은 사람이 없다”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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