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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국세가 15.7조 '역대 최대' 덜 걷혔다...'세수 펑크' 경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올해 1월과 2월 국세가 지난해보다 15조7000억원 덜 걷혔다. 역대 최대 규모로 세수가 감소했다. 부동산 시장과 증시, 수출ㆍ내수 경기가 동시에 얼어붙으면서 ‘세수 펑크’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31일 기획재정부는 이런 내용의 ‘국세 수입 현황’을 공개했다. 올해 1~2월 누계로 국세 수입은 54조2000억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해 15조7000억원 급감했다. 동기 기준 역대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 내 임대 광고가 붙은 빈 점포. 뉴스1

서울 중구 명동거리 내 임대 광고가 붙은 빈 점포. 뉴스1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부동산 거래 감소 등 자산시장 둔화 영향이 컸다”며 “지난해 4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는 등 경기가 위축되고 소비가 어려웠는데 이런 부분도 (세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세목별로 보면 1~2월 소득세는 24조4000억원 걷혔는데, 전년 동기 대비 6조원(19.7%) 줄었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출렁이는 양도소득세 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4조1000억원)하면서다. 2월 세수와 직결되는 지난해 12월 주택 매매량은 전년 대비 46.8%, 순수토지 매매량은 47.6% 각각 감소했다. 부동산 거래량이 반 토막 나면서 소득세 수입도 따라 줄었다.

증시가 얼어붙으면서 증권거래세 수입도 크게 감소했다. 8000억원으로 지난해 1~2월(1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증권거래세에 따라붙는 농어촌특별세까지 고려하면 증시 관련 세수 감소 폭만 1조원에 이른다.

부가가치세 수입도 많이 줄었다. 1~2월 13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9조8000억원)과 견줘 3분의 2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유류세 인하 영향으로 교통세수도 5000억원 감소했고, 관세(7000억원)와 상속증여세(3000억원)도 줄었다.

주요 세목 가운데 전년 대비 세수가 늘어난 건 주세 단 하나다. 1~2월 기준 지난해 7000억원에서 올해 8000억원으로 증가했다. 팍팍한 생활에 술 소비만 여전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2년 차를 맞아 ‘세수 펑크’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세수가 줄어드는 속도가 정부 예상보다 훨씬 빨라서다. 올 1~2월 세수 진도율(1년 동안 걷힐 것으로 예상하는 세수 대비 실제 세수 비율)은 13.5%에 불과하다. 최근 5년 평균(16.9%)에 한참 못 미칠 뿐만 아니라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한 납부 대상자가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에서 종부세 고지 내역을 인쇄해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납부 대상자가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에서 종부세 고지 내역을 인쇄해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세수 진도가 느리긴 하지만 하반기 들어 제 속도를 찾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연초 경기가 바닥을 치고 이후 되살아나야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정정훈 정책관은 “1분기(1~3월) 세수 흐름은 타이트한 상황”이라며 “하반기 이후 경제가 회복된다면 1~2월 세수 부족분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일단 2분기 이후 경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상보다 국세가 수십조원이나 더 걷히는 ‘세수 풍년’이 골칫거리였던 지난해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국가 재정 면에선 ‘세수 펑크’가 더 큰 문제다. 올해 쓰기로 한 예산은 638조7000억원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 윤정부는 긴축 재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국세 등 올해 정부가 예상한 총수입은 625조7000억원으로 총지출보다 적다. 정부는 13조원 재정 적자가 나겠다고 추산했는데, 세금이 기대보다 덜 들어온다면 적자 규모는 그만큼 더 불어난다.

‘세수 펑크’는 ‘재정 펑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자라는 돈은 빚을 추가로 내(국채 발행)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세액공제 확대, 부동산 보유세 감면 등 감세 드라이브를 걸어온 윤정부로선 특히 난감한 상황이다. 정부가 세수 추계를 잘못해서 재정이 더 악화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다.

2012~2014년에도 3년 연속 세수 부족 사태를 빚은 적이 있다. 정부가 각종 감세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경제성장률 등 경기 전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한 게 화근이었다. 세수 문제로 당시 경제부총리를 경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정치권에서 거세게 일기도 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 방향은 맞지만 세수 상황을 보면서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생겼다”며 “정밀하게 세수 예측을 다시 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제 감면 속도를 늦춘다던가 지출을 조절하던가 해서 세수가 대규모로 부족한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현행 휘발유 25%, 경유 37%인 유류세 인하 폭을 축소하고,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60%에서 80%로 환원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모두 세수를 늘리는 방향이다. 연초부터 대규모 세수 감소 문제가 터지면서 이들 방안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경기 한파로 정부가 못 받아낸 세금(국세 체납액)도 크게 불었다. 이날 국세청이 내놓은 올 1분기 국세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국세 누계 체납액은 102조5000억원이다. 1년 사이 2조6000억원 늘어 관련 통계가 나온 이후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전국 133개 세무서 가운데 체납액 1위는 서울 강남으로 2조3000억원에 달했다. 다음은 용인(2조2800억원), 삼성(2조2600억원), 서초(2조2400억원) 등 순이었다.

세금이 가장 많이 걷힌 곳은 주요 기업 본사가 많이 있는 서울 남대문 세무서 (20조1300억원)이었다. 이어 영등포(15조900억원), 부산 수영(14조9000억원) 등 순서였다.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 1위였던 수영 세무서는 지난해 3위로 밀려났다. 수영 세무서 관내에 한국거래소ㆍ한국예탁결제원 등 증권 관련 주요 공공기관 본부가 몰려있는데, 지난해 주식시장 경기가 식으면서 관련 세수가 덜 걷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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