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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석유 밀수, 그뒤엔 삼합회…국제조폭 통해 핵능력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북한은 지난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한 가운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18~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함께 참관한 가운데 전술핵운용부대들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의 석유 밀수에 중국 폭력 조직 삼합회(三合會)가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2017년 정제유 수입을 제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가 발효된 후 북한은 삼합회나 일본의 야쿠자 등 다국적 범죄 조직을 활용한 정교한 밀수 방식을 쓰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와 공동으로 북한까지 석유가 이동한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북한의 석유 밀반입 과정에 삼합회의 지파인 14K 삼합회가 연관돼 있음이 확인됐다.

삼합회 연계 유조선, 20회 이상 북한행

삼합회와 연계된 것으로 지목된 홍콩 석유 무역상 게리 토가 소유하고 있는 유조선 유니카.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니카가 대만해협과 북한 영해를 오가며 북한에 석유를 불법으로 반입했다고 보도했다. 사진 마린트래픽 캡처

삼합회와 연계된 것으로 지목된 홍콩 석유 무역상 게리 토가 소유하고 있는 유조선 유니카.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니카가 대만해협과 북한 영해를 오가며 북한에 석유를 불법으로 반입했다고 보도했다. 사진 마린트래픽 캡처

FT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5일 오전 10시 39분 ‘유니카’란 이름의 유조선은 북한 남포항 서쪽 해상에서 북한 선박과 접선했다. 약 3시간 동안 케이블 선으로 연결된 두 선박에선 불법적으로 석유를 반입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작업이 이뤄졌다. FT는 “유니카호는 홍콩에서 북한으로 직행하는 외국 선박 중 하나”라며 “2019년 이후 최소 23차례 북한이나 북한의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항해했다”고 전했다.

유니카는 사실상 14K 삼합회의 지휘를 받는 선박이란 의심을 받는다. 이 배의 소유주인 홍콩 석유 무역상 게리 토가 14K 삼합회와 깊이 관여돼 있기 때문이다. FT는 “토는 ‘마카오 도박왕’으로 불린 앨빈 차우(중국명 저우줘화·周焯華) 선시티 창업자와 비즈니스 파트너인데 차우는 14K의 리더”라며 “토가 운영한 금 관련 회사의 임원 한 명도 14K 삼합회 조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14K 삼합회는 삼합회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폭력 조직으로 알려졌다. ‘부러진 이빨’이라는 별명을 가진 두목 완콕코이(尹國駒)는 지난 1998년 5월 마카오판 ‘범죄와의 전쟁’ 과정이라 불린 대대적인 폭력 조직 단속 과정에서 체포됐다 2012년 출소했다. FT는 “미국 당국은 차우를 완콕코이의 후계자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마카오 도박왕 앨빈 차우, 北 밀수 네트워크 핵심”

선시티그룹 창업자 앨빈 차우와 홍콩 석유무역상 개리 토가 선시티 그룹 관련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 FTㆍ선시티그룹 페이스북 캡처

선시티그룹 창업자 앨빈 차우와 홍콩 석유무역상 개리 토가 선시티 그룹 관련 행사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한 모습. 사진 FTㆍ선시티그룹 페이스북 캡처

차우는 마카오 조폭 사회 대부인 인궈줘의 후계자로 마카오 카지노 업계를 사실상 쥐고 흔든 인물로 통한다. 지난 2007년 인터넷 도박사업을 통해 도박 업계에 뛰어든 뒤 마카오에 20개 이상의 카지노 업장을 소유하고 운영했다.

지난 2021년 11월 중국 본토를 대상으로 원정 도박과 온라인 도박을 알선한 혐의 등으로 체포된 뒤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18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FT와 RUSI는 “(이번 조사를 통해) 동아시아 전역에서 기업과 개인 등이 북한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100개 이상의 회사와 부동산, 선박, 개인 등을 확인했다”며 “이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이 차우 회장”이라고 지적했다.

삼합회가 북한과의 석유 밀수 네트워크를 형성한 건 지난 2017년 12월 유엔 안보리 제재 이후다. 안보리는 당시 북한의 정제유 수입을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휴 그리피스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조정관은 FT에 “안보리 제재 이후 국제 감시가 강화되면서 단순 밀수 조직들이 무너졌다”며 “이에 정교한 형태의 밀수 능력을 갖춘 다국적 범죄조직이 북한의 밀반입 핵심 네트워크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FT는 “미국의 제재 대상인 북한 은행의 한 자회사가 마카오의 한 사업가로부터 수천만 달러 상당의 석유를 사들였다”며 해당 사업가 역시 차우 및 삼합회와 연계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FT가 지난 2021년 10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이뤄진 대북 석유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유니카호를 통해 북한으로 석유를 밀반입하는 패턴은 이랬다. 현지 당국의 감시나 제재를 받지 않는 ‘깨끗한 선박’을 대만 중서부에 위치한 타이중 항구에 정박시켜 정제유를 싣는다. 이후 해당 선박은 대만해협에서 해당 정제유를 중개 선박으로 옮긴다.

위성촬영 업체 에어버스가 지난해 3월 22일 촬영한 북한 남포항의 모습. 항구에 도착한 유조선에서 석유를 실은 유조차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FTㆍ에어버스 캡처

위성촬영 업체 에어버스가 지난해 3월 22일 촬영한 북한 남포항의 모습. 항구에 도착한 유조선에서 석유를 실은 유조차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FTㆍ에어버스 캡처

이 중개 선박은 대만해협에서 다시 유니카와 접선해 정제유를 옮기고, 유니카는 중국 해안을 따라 북한 영해로 들어가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정제유를 전한다. 이렇게 밀수된 정제유는 북한 남포항에서 연료 트럭으로 옮겨지고, 다시 평양 등으로 배송된다. FT는 “이 같은 과정은 플래닛랩, 에어버스 등 위성업체 사진 등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日야쿠자도…北, 국제 범죄 네트워크로 핵 능력 키워”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북한은 정제유 공급을 늘렸다. RUSI는 2021년 8월부터 2022년 9월 사이 유니카호가 14차례 북한으로 넘긴 정제유는 최대 48만9166 배럴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유엔 패널 보고서를 분석한 북한전문매체 NK프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정제유 불법 수입은 2021년 대비 70%나 증가했다.

FT는 “북한은 삼합회뿐 아니라 일본 야쿠자와 같은 외국 조직범죄 집단을 통한 해외 물품 조달 활동에 의존하고 있다”며 “(삼합회와 야쿠자 같은) 노련한 범죄자들은 북한에 세계적인 밀수, 유통 및 자금 세탁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RUSI는 “북한이 삼합회와 같은 국제 범죄 네트워크를 활용해 제재를 피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북한이 핵전쟁으로 세계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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